<노란 묵> 큰 할인점에 가서 장을 보면 아이들은 시식코너 음식 먹는 재미가 아주 쏠쏠한 눈치다.
묵을 좋아하는 딸들을 데리고 묵 시식코너를 갔다. 보통 묵, 청포묵, 치자묵 등 색깔도 예쁜 묵이 깍두기 모양으로 썰어있었다. "소은이 묵
먹을래?" "엄마, 난 노란색 묵 먹을래요." 노란색 묵을 이쑤시개로 콕 찍어 주었더니 먹기 전에 나에게 묻기를. "엄마 노란색
묵은 단무지 맛이예요?"
<이쁜 이유> 요즘 소은이가 부쩍 이쁘고 귀여워 나는 소미 몰래 자주 끌어다가 안아준다. 아랫집에서 놀다가 집에 잠깐 무얼
가지러 들른 소은이에게 한 마디 했다. "에구, 엄만 요즘 우리 소은이가 왜 이케 이쁘냐아?" 그랬더니 소은이가 다소 도도한 표정으로
눈을 아래로 살짝 깔며 이런 말을 픽 던지고 문밖으로 사라진다. "엄마가 딸을 잘 낳으신 거예요. 귀여운 딸로."
<아침에> 요즘은 아이들이 아침에 이불 속에서 꼼지락거리는 시간이 길다. 일어나라고 채근하는데 잠이 덜 깬 목소리로
소은이가 말했다. "아우웅, 아기가 됐으면 좋겠다." "왜에?" "유치원 안 가도 되니까." "그럼 뭐 이제부터 가지 마.
집에서 그냥 텔레비전이나 보면서 바보 되는 거지 뭐." 벌떡 일어난 건 말할 것도 없다.
<신부님과 대화> 지난 10월 끝 주 일요일에 가까운 가락동성당에서 미사를 드렸다. 그날 하루 동안 미사를 집전하신
신부님이 우리 가족과 잘 아는 신부님이셨던 터라 미사 끝나고 신부님과 점심식사를 함께 했다. 신부님께 소미는 이담에 박사수녀님이 되겠다고 하고
소은이는 간호사수녀님이 되겠다고 말씀드렸더니 신부님 덕담이 이어졌다. "박사수녀님!" (소미가)"네!" "꼭 잘 자라서
박사수녀님 되세요." "네." "그리고 간호사수녀님!" (소은이가) "네!" "꼭 어른들 말씀 잘 듣고 기도 많이 해서
간호사수녀님 되세요." "네." 이때 남편이 옆에서 아이들 들으라고 한마디했다. "그런데 우리 장래 수녀님들은 미사시간에
떠들지나 말고 좀 조용히 미사 드렸으면 좋겠어요." 그랬더니 소은이가 주저 없이 탁 받아치는 말에 어른들이 모두 뒤로
넘어갔다. "아빠는 상관쓰지(하지) 마세요오."
<나보다 몰라> 소미와 소은이는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잘 맞추지도 못하면서 퀴즈 프로그램을 아주 좋아한다. 특히
고등학생들의 재기발랄이 넘치는 '도전! 골든벨'을 잘 보는데 그날은 부석사와 소수서원으로 유명한 경북 영주고등학교 편이었다. 때마침 소미와
소은이도 능히 맞출 수 있는 흥미로운 문제가 나왔다. '고기잡이'라는 오래된 동요의 가사 한 소절을 맞추는 문제였다.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갈까나 / 고기를 강으로 바다로 갈까나 ○○○ 가득히 넣어 가지고서 / 랄랄랄랄 랄랄랄라 온다네
바로 이 '땡땡땡' 동그라미 안에 들어가는 가사가 무엇일까 하는 문제다. 그런데 오빠들이 화이트보드에 쓴 답은 아주 가관이었다. '주머니'
'바구니' '어항에' 심지어는 '수족관'까지 있었다. 이것을 본 소은이는 흥분하며 소리쳤다. "아구구, '이병에'지, '이병에.' 저
오빠들 정신이 빠졌다 정신이 빠졌어."
<은행나무 아래서> 아파트 단지 안 은행잎이 온통 노랗게 너무 예뻐서 아이들을 세워놓고 사진을 찍었다. 이리저리 사진을
찍다가 소미가 꽤 기분이 좋은지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드라마 같애. 단풍잎은 드라마 같지 않은데 은행잎은 드라마
같애." 어린아이에게도 나름의 '이미지'란 게 있나보다 짐작한다.
<바람 부는 날> 찬바람이 나무를 세차게 흔들어대는 것을 집안에서만 보다가, 유치원에서 돌아온 아이들을 맞으며 소미에게
물었다. "바람 무척 많이 불지? 안 추웠어?" "근데 엄마, 길이 나뭇잎 카페트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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