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뼘 성장드라마
욕실에 갇히다 본문
다 저녁이 된 시간이었다. 남편은 퇴근을 하여 몇몇 사람들과 밖에서 저녁식사를
한다고 집에 와서 옷을 갈아입고 다시 나갔다. 나는 반찬이 시원찮았던 터라 오히려
잘 되었다 쾌재를 부르면서, 여유있게 먼저 아이들이 온통 어지른 것 중 발길에 심하게
차이는 것만 대강 치웠다.
소은이가 응아를 하겠다고 해서 변기(소은이는 어른 변기에 아이변기를 덧씌운 곳에
앉아서 일(?)을 치른다)에 앉혀두고 두 아이가 먹을 반찬을 둘러보던 중이었다. 소미가
슬그머니 나한테 오더니 아주 아무렇지도 않다는 목소리로 "엄마, 내가 화장실 문을
잠갔어요. 칼 좀 줘보세요. 제가 열게요" 이러는 게 아닌가?
우리 집 큰방 문은 문틈이 조금 떠있는 형편이라 안에서 잠가도 칼로 간단하게 열
수 있다. 소미가 문을 잠그고 놀고 있는데 여간해서 안 열어줄 때나, 잘못해서 손잡이
꼭지를 눌러놓은 줄 모르고 문을 닫아서 잠겼을 때 이 방법을 쓰는데 이걸 보고 하는
소리였다. 자기가 일부러 잠갔지만 놀라지 마시라, 엄마는 간단하게 칼로 문 따는데
무슨 걱정인가요 하는 톤이었다.
나도 처음에는 소미 말투에 만만치 않게 심심한 목소리로 "왜 잠갔어? 거기 문은
칼로 안 된단 말이야" 그러면서 눈과 손은 열심히 냉장고를 뒤졌다. 욕실 문은 우리가
이사오기 전에 새로 맞춰 바꿔 단 문이라 어느 한곳 틈이 없이 딱 맞았다. 그러나
신발장 위에 한 열쇠꾸러미가 있는데 그게 욕실 열쇠겠지 했던 것이다.
그러나 아니었다. 네 개의 열쇠가 모두 안 맞았다. 휴! 그때부터 확 당황하기 시작했는데
아무 생각도 안 났다. 소은이는 그때까지 한참 웅얼대며 뭐라고 노래 비슷한 걸 주절대더니
곧이어 "엄마, 다애떠(다했어)"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소은이가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닌데
등골이 서늘해지는 게 눈앞이 노래지는 느낌까지 들었다.
열쇠집 전화번호도 당장 아는 것이 없었고 전화를 해서 바로 달려온다고 해도 족히
20분 넘게 걸릴 것이 분명했다. 그동안 소은이는 참지 못하고 울거나 버둥대다가
변기에서 떨어질 수도 있다 생각하니 참 암담했다. 크게 다칠 정도는 아니겠으나
계속 울면서 아이가 문 열어달라고 우는 소리를 못들을 것만 같았다.
되는대로 전화번호를 누른다는 것이 옆 통로에 사는 소은이 친구 선재네 집에 걸었다.
"선재엄마, 어떡해. 우리 소은이가 욕실에 갇혔어. 소미가 문을 잠가버렸어. 어쩜 좋아."
평소에 자주 오가며 나를 언니라고 부르는 선재엄마는 내 목소리에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응? 정말? 어쩌다가! 언니, 내가 내려갈게. 중대장님한테 전화해요."
소미는 사태의 심각성을 여전히 모른 채 나를 졸졸 따라 다니며 뭐라고 종알댔다.
"어휴, 소미야. 욕실 문은 칼로 안 열린단 말이야. 여기에 맞는 열쇠가 있어야 열리는
건데 안 되잖아. 소은이 어떻게 나오니? 난 못살아."
남편에게 전화를 한들 뾰족한 수가 없음을 알면서도 나는 전화를 했다. 남편은 온다
소리도 없이 상황이 어떤지만 물었다. 소은이는 점점 크고 짜증이 섞인 소리로 "다애떠"를
연발하고 "엄마, 엄마" 그러다가 "응아 다애떠"하고 소리치길 계속했다.
그때 누가 집으로 들어왔다. 뜻밖에 선재엄마가 아니고 채구엄마가 왔다. 나는 남편에게
누가 왔으니 일단 끊자고 했다. 채구엄마는 선재네 집에 있었는데 소식을 듣고 자기가
왔노라고 하면서 거침없이 창문으로 들어가겠다고 했다. 요 예쁘장하고 작은 몸피를
가진 새댁은 아주 씩씩하고 귀엽다. "제가 그런 일에 좀 일가견이 있어요" 이러면서
뒷편 보일러실로 가는데 왜 그리 믿음직스럽던지. 천군만마를 만난 기분이었다.
나는 "소은아, 채구이모 왔다. 조금만 기다려. 그래, 조금만 기다려. 곧 나오게 해줄게"를
되풀이 소리치며 이리저리 왔다갔다했다. 그녀는 슬리퍼를 신고서 보일러 본체를
밟고 다시 두 드럼들이 기름통으로 올라서서 가로 27cm, 세로 53cm 되는 한쪽 창문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허리까지는 비교적 유연하게 어려움 없이 들어갔는데 골반에서
좀 끼는 모양이었다. 낑낑대며 어찌 어찌 몸을 옆으로 틀어서 어렵사리 들어가는
걸 확인하고 안도했다.
참 대단했다. 창문이 아주 작았는데 두 짝을 모두 떼어내지도 않고 한쪽 창문으로만
들어가니 말이다. 다행히 욕조 위에 두꺼운 널빤지를 깔고 놓은 세탁기 덕분에 그녀는
고꾸라지는 걸 면할 수 있었다. 아마 세탁기가 없었으면 엄두도 못 내었을 일이었다.
소은이는 나를 보자 생글생글 웃으며 "다애떠 응아" 이랬다. 채구엄마가 창문으로
쓰윽 들어가자 눈을 휘둥그레 홉뜨고는 놀란 얼굴이었다고 했다. '에그머니나! 왜 문
놔두고 채구이모는 이리로 들어올까? 참 이상도 하지'하는 듯한 표정으로.
불과 20분이 채 되지 않게 시간이 흘렀는데 한 시간 이상 흐른 것 같았다. 선재엄마도
선재, 채구 두 아이 모두 두고 내려왔다. 자기가 지난 여름 선재를 차 안에 두고 문을
잠갔던 경험이 있었는데 또 그 생각이 나서 너무 떨리더라고 했다.
이웃의 빠른 판단와 행동 덕분에 소은이는 우는 시간을 없앨 수 있었고 내 마음도
진정이 되었다. 남편에게 전화를 했더니 그때서야 집에 오려고 술도 안 먹고 있었다나?
그러면서 하는 말.
"정말 고맙네. 거 채구엄마 맛있는 것 좀 해 드려. 나는 옆에 앉은 채구아빠한테나
술 한 잔 따라줘야겠다."
논리가 맞는 건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나는 소리내서 웃을 정도로 여유를 찾았다.
휴! 나는 정말이지 고치고 싶다. 당황하면 침착성을 완전히 잃는 본성을. 누군가를
식사 초대해놓고 손님이 시간보다 조금 이르게 와서 기다리면, 그릇을 깨거나 음식을
엎거나 손을 데이길 잘한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 심호흡도 해보고 그러는데 별
효과가 없다.
아주 높은 나무에 겁도 없이 올라간 어린 아들을 본 엄마가, 아이가 놀라서 발을
헛딛을까 염려하며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고 부드러운 말로 다독이고 격려하여 무사히
내려오게 했다는 이야기, 아주 어릴 때 들었던가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 이야기를 떠올리며 나를 훈련시키려 해도 좀체 어렵다. 변기에 얌전히 앉아서
갇힌 비교적 양호한 상황에서도 가슴이 심하게 두방망이질하고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니
중증이다. 담력을 기르고 느긋한 마음갖기를 훈련하면 좀 나아질까. 참 우울한 기분이
든 사건이었다.
모두 돌아가고 밥상을 차리는 동안 소미와 소은이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한
구석에서 사이좋게 놀았다. 그런데 소미가 하는 소리를 가만히 들어보니 웃음이 절로
났다.
"소은아, 고생했어. 언니가 잘못한 거 같애. 어이구 우리 소은이 힘들었겠다. 미안해.
다시는 문 안 잠글게."
그러면서 소은이 어깨를 토닥거리더니 다시 장난감 전화기를 들고 제 아빠에게 전화를
했다.
"아빠, 소은이가 증말 고생했어요. 클 날 뻔했어요. 제가요. 화장실이 문을 똑 잠갔거던요.
그런데 채구이모가 오셔서 소은이를 살려주셨어요. 언니가 좀 잘못한 거 같애요. 다음부턴
절대로 안 그럴 거예요.…… 소은아, 아빠한테 말해봐. '응아하다가 한참동안 못 나왔어요.
언니가 좀 잘못한 거 같애요' 그렇게. 응? 그렇게 말해봐."
한다고 집에 와서 옷을 갈아입고 다시 나갔다. 나는 반찬이 시원찮았던 터라 오히려
잘 되었다 쾌재를 부르면서, 여유있게 먼저 아이들이 온통 어지른 것 중 발길에 심하게
차이는 것만 대강 치웠다.
소은이가 응아를 하겠다고 해서 변기(소은이는 어른 변기에 아이변기를 덧씌운 곳에
앉아서 일(?)을 치른다)에 앉혀두고 두 아이가 먹을 반찬을 둘러보던 중이었다. 소미가
슬그머니 나한테 오더니 아주 아무렇지도 않다는 목소리로 "엄마, 내가 화장실 문을
잠갔어요. 칼 좀 줘보세요. 제가 열게요" 이러는 게 아닌가?
우리 집 큰방 문은 문틈이 조금 떠있는 형편이라 안에서 잠가도 칼로 간단하게 열
수 있다. 소미가 문을 잠그고 놀고 있는데 여간해서 안 열어줄 때나, 잘못해서 손잡이
꼭지를 눌러놓은 줄 모르고 문을 닫아서 잠겼을 때 이 방법을 쓰는데 이걸 보고 하는
소리였다. 자기가 일부러 잠갔지만 놀라지 마시라, 엄마는 간단하게 칼로 문 따는데
무슨 걱정인가요 하는 톤이었다.
나도 처음에는 소미 말투에 만만치 않게 심심한 목소리로 "왜 잠갔어? 거기 문은
칼로 안 된단 말이야" 그러면서 눈과 손은 열심히 냉장고를 뒤졌다. 욕실 문은 우리가
이사오기 전에 새로 맞춰 바꿔 단 문이라 어느 한곳 틈이 없이 딱 맞았다. 그러나
신발장 위에 한 열쇠꾸러미가 있는데 그게 욕실 열쇠겠지 했던 것이다.
그러나 아니었다. 네 개의 열쇠가 모두 안 맞았다. 휴! 그때부터 확 당황하기 시작했는데
아무 생각도 안 났다. 소은이는 그때까지 한참 웅얼대며 뭐라고 노래 비슷한 걸 주절대더니
곧이어 "엄마, 다애떠(다했어)"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소은이가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닌데
등골이 서늘해지는 게 눈앞이 노래지는 느낌까지 들었다.
열쇠집 전화번호도 당장 아는 것이 없었고 전화를 해서 바로 달려온다고 해도 족히
20분 넘게 걸릴 것이 분명했다. 그동안 소은이는 참지 못하고 울거나 버둥대다가
변기에서 떨어질 수도 있다 생각하니 참 암담했다. 크게 다칠 정도는 아니겠으나
계속 울면서 아이가 문 열어달라고 우는 소리를 못들을 것만 같았다.
되는대로 전화번호를 누른다는 것이 옆 통로에 사는 소은이 친구 선재네 집에 걸었다.
"선재엄마, 어떡해. 우리 소은이가 욕실에 갇혔어. 소미가 문을 잠가버렸어. 어쩜 좋아."
평소에 자주 오가며 나를 언니라고 부르는 선재엄마는 내 목소리에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응? 정말? 어쩌다가! 언니, 내가 내려갈게. 중대장님한테 전화해요."
소미는 사태의 심각성을 여전히 모른 채 나를 졸졸 따라 다니며 뭐라고 종알댔다.
"어휴, 소미야. 욕실 문은 칼로 안 열린단 말이야. 여기에 맞는 열쇠가 있어야 열리는
건데 안 되잖아. 소은이 어떻게 나오니? 난 못살아."
남편에게 전화를 한들 뾰족한 수가 없음을 알면서도 나는 전화를 했다. 남편은 온다
소리도 없이 상황이 어떤지만 물었다. 소은이는 점점 크고 짜증이 섞인 소리로 "다애떠"를
연발하고 "엄마, 엄마" 그러다가 "응아 다애떠"하고 소리치길 계속했다.
그때 누가 집으로 들어왔다. 뜻밖에 선재엄마가 아니고 채구엄마가 왔다. 나는 남편에게
누가 왔으니 일단 끊자고 했다. 채구엄마는 선재네 집에 있었는데 소식을 듣고 자기가
왔노라고 하면서 거침없이 창문으로 들어가겠다고 했다. 요 예쁘장하고 작은 몸피를
가진 새댁은 아주 씩씩하고 귀엽다. "제가 그런 일에 좀 일가견이 있어요" 이러면서
뒷편 보일러실로 가는데 왜 그리 믿음직스럽던지. 천군만마를 만난 기분이었다.
나는 "소은아, 채구이모 왔다. 조금만 기다려. 그래, 조금만 기다려. 곧 나오게 해줄게"를
되풀이 소리치며 이리저리 왔다갔다했다. 그녀는 슬리퍼를 신고서 보일러 본체를
밟고 다시 두 드럼들이 기름통으로 올라서서 가로 27cm, 세로 53cm 되는 한쪽 창문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허리까지는 비교적 유연하게 어려움 없이 들어갔는데 골반에서
좀 끼는 모양이었다. 낑낑대며 어찌 어찌 몸을 옆으로 틀어서 어렵사리 들어가는
걸 확인하고 안도했다.
참 대단했다. 창문이 아주 작았는데 두 짝을 모두 떼어내지도 않고 한쪽 창문으로만
들어가니 말이다. 다행히 욕조 위에 두꺼운 널빤지를 깔고 놓은 세탁기 덕분에 그녀는
고꾸라지는 걸 면할 수 있었다. 아마 세탁기가 없었으면 엄두도 못 내었을 일이었다.
소은이는 나를 보자 생글생글 웃으며 "다애떠 응아" 이랬다. 채구엄마가 창문으로
쓰윽 들어가자 눈을 휘둥그레 홉뜨고는 놀란 얼굴이었다고 했다. '에그머니나! 왜 문
놔두고 채구이모는 이리로 들어올까? 참 이상도 하지'하는 듯한 표정으로.
불과 20분이 채 되지 않게 시간이 흘렀는데 한 시간 이상 흐른 것 같았다. 선재엄마도
선재, 채구 두 아이 모두 두고 내려왔다. 자기가 지난 여름 선재를 차 안에 두고 문을
잠갔던 경험이 있었는데 또 그 생각이 나서 너무 떨리더라고 했다.
이웃의 빠른 판단와 행동 덕분에 소은이는 우는 시간을 없앨 수 있었고 내 마음도
진정이 되었다. 남편에게 전화를 했더니 그때서야 집에 오려고 술도 안 먹고 있었다나?
그러면서 하는 말.
"정말 고맙네. 거 채구엄마 맛있는 것 좀 해 드려. 나는 옆에 앉은 채구아빠한테나
술 한 잔 따라줘야겠다."
논리가 맞는 건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나는 소리내서 웃을 정도로 여유를 찾았다.
휴! 나는 정말이지 고치고 싶다. 당황하면 침착성을 완전히 잃는 본성을. 누군가를
식사 초대해놓고 손님이 시간보다 조금 이르게 와서 기다리면, 그릇을 깨거나 음식을
엎거나 손을 데이길 잘한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 심호흡도 해보고 그러는데 별
효과가 없다.
아주 높은 나무에 겁도 없이 올라간 어린 아들을 본 엄마가, 아이가 놀라서 발을
헛딛을까 염려하며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고 부드러운 말로 다독이고 격려하여 무사히
내려오게 했다는 이야기, 아주 어릴 때 들었던가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 이야기를 떠올리며 나를 훈련시키려 해도 좀체 어렵다. 변기에 얌전히 앉아서
갇힌 비교적 양호한 상황에서도 가슴이 심하게 두방망이질하고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니
중증이다. 담력을 기르고 느긋한 마음갖기를 훈련하면 좀 나아질까. 참 우울한 기분이
든 사건이었다.
모두 돌아가고 밥상을 차리는 동안 소미와 소은이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한
구석에서 사이좋게 놀았다. 그런데 소미가 하는 소리를 가만히 들어보니 웃음이 절로
났다.
"소은아, 고생했어. 언니가 잘못한 거 같애. 어이구 우리 소은이 힘들었겠다. 미안해.
다시는 문 안 잠글게."
그러면서 소은이 어깨를 토닥거리더니 다시 장난감 전화기를 들고 제 아빠에게 전화를
했다.
"아빠, 소은이가 증말 고생했어요. 클 날 뻔했어요. 제가요. 화장실이 문을 똑 잠갔거던요.
그런데 채구이모가 오셔서 소은이를 살려주셨어요. 언니가 좀 잘못한 거 같애요. 다음부턴
절대로 안 그럴 거예요.…… 소은아, 아빠한테 말해봐. '응아하다가 한참동안 못 나왔어요.
언니가 좀 잘못한 거 같애요' 그렇게. 응? 그렇게 말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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