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뼘 성장드라마
나한텐 안돼! 본문
소미와 소은이에겐 두 명의 사촌이 있다. 시누이가 낳은 연년생 남매 도연이와 도훈이.
두 남매는 눈에 띄게 잘 생긴 외모를 타고났다. 피부는 아주 하얀데다가 눈이 크고
시원하게 맑다. 어디 한 군데 처지는 데 없이 반듯하고 깜찍하다. 도연이는 조금 지난
미국 영화 <내 사랑 컬리 수>의 주인공 소녀의 얼굴을 떠올리면 딱 좋다.
네 아이는 소미 만 43개월, 도연이 만 36개월, 도훈이 만 22개월, 소은이 만 19개월
이런 순서인데, 아주 고만고만한 게 뭉치면 정신이 하나도 없다. 그것이야말로 전쟁이다.
그런데 엊그제 남편의 짧은 휴가를 맞아 넷이 뭉치게 되었다.
소미와 도연이는 찰떡 궁합이 되어서 싸우지도 않고 너무나 잘 노니 늘 걱정이 없다.
오히려 도연이는 저희 남매끼리 지낼 때보다 어른들에게 치대지도 않고 도훈이와
싸울 기회도 적어 훨씬 좋다고 어머니가 그러셨다.
문제는 도훈이와 소은이. 도훈이는 그 잘 생긴 외모에 넉넉한 마음까지 받쳐준다면
참 좋겠는데 그게 그렇지가 않았다. 욕심이 많아서 무엇이든 자기가 갖지 않고서는
배기질 못했다. 평소엔 제 누나와 어떤 장난감 때문에 많이 싸운다는데, 우리가 가면
꼭 소은이가 가진 것만 빼앗았다.
발은 소미보다 더 크고 키도 소미와 비슷하다. 몸무게는 소미보다 무려 2킬로가
더 나가는데 이상하게 소미에겐 덤비지 않았다. 그리곤 죽어라고 소은이가 가진 것만
달라고 성화고 주지 않으면 줄 때까지 소리치며 울고불고했다. 소은이 손에 것을
빼앗아서 들고는 또 다른 걸 들고 있으면 또 빼앗아서 들고 했다. 나중엔 제 품에 다
보듬기 벅찰 지경이 되어 자꾸 한두 개를 떨구면서도 지치지 않고 빼앗고 주워들고
하는 걸 되풀이했다.
탈것도 그랬다. 세 발 자전거를 타려면 와서 끄집어내리고 저쪽에 있는 붕붕카를
타려면 또 그리로 가서 내리라고 성화였다. 아주 바쁘기가 이루 말할 수 없고 애가
닳아서 어쩔 줄 몰랐다. 소은이가 좀 반항할라치면 때리고 밀치는 건 보통으로 했다.
그 큰손과 덩치에 밀리면 소은이는 그냥 픽 쓰러진다. 소은이는 그 성질 다 어디
갔는지 그냥 앙앙대며 눈물을 쏟고 울기만 했다.
보다못해 내가 소은이를 들쳐업었다. 그랬더니 도훈이는 나를 따라와서 소은이 엉덩이를
때렸다. 내가 그 형국을 보고 오죽하면 "아이구 이 녀석아, 너도 참 피곤하게 산다.
좀 내버려두어라 좀" 했을까.
시누이와 아주버님도 야단을 안 치는 게 아니다. 신문지 둘둘 만 걸로 엉덩이를
펑펑 소리나게 때려보고 야단도 치지만 그때뿐이었다. 시누이는 날 보고 "도대체
얘 왜 이러니? 도무지 안돼"하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지만 나는 차마 하고 싶은
말을 다하지 못했다.
손아래 사람인 내가 이러구저러구 조언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고, 행여 기분이
상할까 싶어서 어려웠다. 시누이에게도 아주버님께도 한 번 안 되는 건 끝까지 안
된다는 걸 한두 번만 보여 주시라고만 조심스레 말했다. 그런데 그러면 집이 떠나
갈 정도로 시끄러워서 어쩔 수가 없다고 했다. 내가 가만 보아도 안 주면 시끄러워지니까
웬만하면 도연이에게 양보시켰다. 우리가 가도 어떤 장난감으로 시비가 붙으면 대부분
도연이나 소미, 소은이가 양보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내가, 유치하지만 내가 십자가를 지기로 했다. 두 분 다 직장생활을 하기
때문에 아이들과 살갑게 지낼 시간이 부족해서 따끔하게 독하게 하는 일이 잘 안
되는 것도 같았기 때문에. 그러나 늘 같이 사는 사람이 아닌 이 외숙모가 야단을
칠 순 없었다. 다만 나나 소미, 소은이와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절대 자기 고집이
안 통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자 마음먹었다.
유치함도 불사했다. 소은이가 든 것을 빼앗으면 도로 내 손으로 빼앗아서 소은이에게
주었다.
"먼저 집은 사람이 갖고 노는 거야. 넌 좀 기다려. 어허, 뺏지 말래두. 이 노옴"
이랬더니 처음엔 막 울었다. 나는 어머니나 시누이가 있어도 그냥 그렇게 했다. 포대기를
자기 거라고 못 쓰게 했지만 그냥 울던 말던 내버려두고 막 업었다.
그렇게 한두 번 힘겨운 시도를 시작했던 때가 요 전에 내가 아이들만 데리고 만났을
때부터였다. 나는 남편에게 도훈이를 위해서는 좀 내 방식대로 하겠다고 말했다. 남편은
흔쾌히 그래야 한다고 하더니 이번엔 가세했다. "얌마, 넌 좀 그거 고쳐야 돼. 다 널
위해서 그러는 거야"했다. 도훈이가 남편, 그러니까 외삼촌을 전부터 어려워하였던
터라 효과는 더욱 좋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고집은 차츰 약한 모습을 보이더니 아주 놀라운 일을 보였다. 앉은뱅이
상에서 네 아이가 어머님과 밥을 먹었다. 소은이가 무릎을 꿇고 엉덩이를 든 채 밥을
먹길래 내가 슬그머니 도훈이 눈치 안 채게 병원놀이 상자에 앉혀주었다.
한참 밥을 먹다가 도훈이가 그걸 알아냈다. 그런데 일어서서 두리번거리더니 호랑이
쿠션을 가져다가 앉는 게 아닌가. 얼마 전 같으면 그걸 빼앗아 앉으려고 한바탕 난리를
치뤘을 것인데 말이다. 어머님은 박장대소를 하시며 너무 놀랍다고 깔깔 웃으셨다.
신기하다고까지 하시더니 점심 후에 전화를 해온 시누이에게 그 사건을 말씀하셨다.
그 후 내가 소은이를 업으려고 하니, 못 업게 포대기를 막 빼앗으려고 하다가 소파에
앉은 남편의 눈치를 슬쩍 보는 게 아닌가. 남편은 눈을 감고 비스듬이 누워만 있었는데도
도훈이는 더 어쩌지 못했다. 어머님은 이제는 아예 바닥에 주저앉으셔서 큰소리로
웃으셨다.
그런데 녀석이 밉지 않은 게 야단을 하고 제 고집을 꺾어보겠다고 나선 이 외숙모나
외삼촌에게 덥석 잘 안기고 애교를 잘 부렸다. 소은이에게 하는 것을 보면 밉다가도
씩 웃으면서 펑퍼짐한 궁둥이 들이밀며 내 무릎에 앉는 걸 보면 안 예뻐할 수가 없다.
그래도 여전히 좀 아쉬운 것은 도훈이는 아빠나 엄마 때문에 조금씩 달라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난 그저 손님 같은 사람 아닌가. 외삼촌이나 외숙모가 있을 때만
양보하는 건 사실 소용없다. 눈치만 보는 것이 될 뿐.
아이들은 무엇이든 세 번을 넘기기 힘들다. 아주 유별한 경우만 아니면 젖떼는 것도
한 삼 일만 고생하면 떨어진다. 아무리 황소고집이라도 딱 세 번만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걸 보여주면 더 이상 막무가내로 고집 부리는 일엔 힘이 없어진다.
나도 소미에게 해 보았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하다는 걸 경험으로 알았다. 그런 것을
터득하는 것은 때론 어른들보다 아이가 더 영리하다.
하긴 우리 집도 소은이의 기질이나 고집이 만만찮은 걸 점점 더 피부로 느끼니 큰
소리칠 일이 아니다. 아주 뒤로 넘어가며 우는 일도 예사니 나 역시 입 찬 소리는
여기서 그칠 일이다.
*도훈이의 발. 소미보다 더 크다.

두 남매는 눈에 띄게 잘 생긴 외모를 타고났다. 피부는 아주 하얀데다가 눈이 크고
시원하게 맑다. 어디 한 군데 처지는 데 없이 반듯하고 깜찍하다. 도연이는 조금 지난
미국 영화 <내 사랑 컬리 수>의 주인공 소녀의 얼굴을 떠올리면 딱 좋다.
네 아이는 소미 만 43개월, 도연이 만 36개월, 도훈이 만 22개월, 소은이 만 19개월
이런 순서인데, 아주 고만고만한 게 뭉치면 정신이 하나도 없다. 그것이야말로 전쟁이다.
그런데 엊그제 남편의 짧은 휴가를 맞아 넷이 뭉치게 되었다.
소미와 도연이는 찰떡 궁합이 되어서 싸우지도 않고 너무나 잘 노니 늘 걱정이 없다.
오히려 도연이는 저희 남매끼리 지낼 때보다 어른들에게 치대지도 않고 도훈이와
싸울 기회도 적어 훨씬 좋다고 어머니가 그러셨다.
문제는 도훈이와 소은이. 도훈이는 그 잘 생긴 외모에 넉넉한 마음까지 받쳐준다면
참 좋겠는데 그게 그렇지가 않았다. 욕심이 많아서 무엇이든 자기가 갖지 않고서는
배기질 못했다. 평소엔 제 누나와 어떤 장난감 때문에 많이 싸운다는데, 우리가 가면
꼭 소은이가 가진 것만 빼앗았다.
발은 소미보다 더 크고 키도 소미와 비슷하다. 몸무게는 소미보다 무려 2킬로가
더 나가는데 이상하게 소미에겐 덤비지 않았다. 그리곤 죽어라고 소은이가 가진 것만
달라고 성화고 주지 않으면 줄 때까지 소리치며 울고불고했다. 소은이 손에 것을
빼앗아서 들고는 또 다른 걸 들고 있으면 또 빼앗아서 들고 했다. 나중엔 제 품에 다
보듬기 벅찰 지경이 되어 자꾸 한두 개를 떨구면서도 지치지 않고 빼앗고 주워들고
하는 걸 되풀이했다.
탈것도 그랬다. 세 발 자전거를 타려면 와서 끄집어내리고 저쪽에 있는 붕붕카를
타려면 또 그리로 가서 내리라고 성화였다. 아주 바쁘기가 이루 말할 수 없고 애가
닳아서 어쩔 줄 몰랐다. 소은이가 좀 반항할라치면 때리고 밀치는 건 보통으로 했다.
그 큰손과 덩치에 밀리면 소은이는 그냥 픽 쓰러진다. 소은이는 그 성질 다 어디
갔는지 그냥 앙앙대며 눈물을 쏟고 울기만 했다.
보다못해 내가 소은이를 들쳐업었다. 그랬더니 도훈이는 나를 따라와서 소은이 엉덩이를
때렸다. 내가 그 형국을 보고 오죽하면 "아이구 이 녀석아, 너도 참 피곤하게 산다.
좀 내버려두어라 좀" 했을까.
시누이와 아주버님도 야단을 안 치는 게 아니다. 신문지 둘둘 만 걸로 엉덩이를
펑펑 소리나게 때려보고 야단도 치지만 그때뿐이었다. 시누이는 날 보고 "도대체
얘 왜 이러니? 도무지 안돼"하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지만 나는 차마 하고 싶은
말을 다하지 못했다.
손아래 사람인 내가 이러구저러구 조언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고, 행여 기분이
상할까 싶어서 어려웠다. 시누이에게도 아주버님께도 한 번 안 되는 건 끝까지 안
된다는 걸 한두 번만 보여 주시라고만 조심스레 말했다. 그런데 그러면 집이 떠나
갈 정도로 시끄러워서 어쩔 수가 없다고 했다. 내가 가만 보아도 안 주면 시끄러워지니까
웬만하면 도연이에게 양보시켰다. 우리가 가도 어떤 장난감으로 시비가 붙으면 대부분
도연이나 소미, 소은이가 양보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내가, 유치하지만 내가 십자가를 지기로 했다. 두 분 다 직장생활을 하기
때문에 아이들과 살갑게 지낼 시간이 부족해서 따끔하게 독하게 하는 일이 잘 안
되는 것도 같았기 때문에. 그러나 늘 같이 사는 사람이 아닌 이 외숙모가 야단을
칠 순 없었다. 다만 나나 소미, 소은이와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절대 자기 고집이
안 통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자 마음먹었다.
유치함도 불사했다. 소은이가 든 것을 빼앗으면 도로 내 손으로 빼앗아서 소은이에게
주었다.
"먼저 집은 사람이 갖고 노는 거야. 넌 좀 기다려. 어허, 뺏지 말래두. 이 노옴"
이랬더니 처음엔 막 울었다. 나는 어머니나 시누이가 있어도 그냥 그렇게 했다. 포대기를
자기 거라고 못 쓰게 했지만 그냥 울던 말던 내버려두고 막 업었다.
그렇게 한두 번 힘겨운 시도를 시작했던 때가 요 전에 내가 아이들만 데리고 만났을
때부터였다. 나는 남편에게 도훈이를 위해서는 좀 내 방식대로 하겠다고 말했다. 남편은
흔쾌히 그래야 한다고 하더니 이번엔 가세했다. "얌마, 넌 좀 그거 고쳐야 돼. 다 널
위해서 그러는 거야"했다. 도훈이가 남편, 그러니까 외삼촌을 전부터 어려워하였던
터라 효과는 더욱 좋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고집은 차츰 약한 모습을 보이더니 아주 놀라운 일을 보였다. 앉은뱅이
상에서 네 아이가 어머님과 밥을 먹었다. 소은이가 무릎을 꿇고 엉덩이를 든 채 밥을
먹길래 내가 슬그머니 도훈이 눈치 안 채게 병원놀이 상자에 앉혀주었다.
한참 밥을 먹다가 도훈이가 그걸 알아냈다. 그런데 일어서서 두리번거리더니 호랑이
쿠션을 가져다가 앉는 게 아닌가. 얼마 전 같으면 그걸 빼앗아 앉으려고 한바탕 난리를
치뤘을 것인데 말이다. 어머님은 박장대소를 하시며 너무 놀랍다고 깔깔 웃으셨다.
신기하다고까지 하시더니 점심 후에 전화를 해온 시누이에게 그 사건을 말씀하셨다.
그 후 내가 소은이를 업으려고 하니, 못 업게 포대기를 막 빼앗으려고 하다가 소파에
앉은 남편의 눈치를 슬쩍 보는 게 아닌가. 남편은 눈을 감고 비스듬이 누워만 있었는데도
도훈이는 더 어쩌지 못했다. 어머님은 이제는 아예 바닥에 주저앉으셔서 큰소리로
웃으셨다.
그런데 녀석이 밉지 않은 게 야단을 하고 제 고집을 꺾어보겠다고 나선 이 외숙모나
외삼촌에게 덥석 잘 안기고 애교를 잘 부렸다. 소은이에게 하는 것을 보면 밉다가도
씩 웃으면서 펑퍼짐한 궁둥이 들이밀며 내 무릎에 앉는 걸 보면 안 예뻐할 수가 없다.
그래도 여전히 좀 아쉬운 것은 도훈이는 아빠나 엄마 때문에 조금씩 달라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난 그저 손님 같은 사람 아닌가. 외삼촌이나 외숙모가 있을 때만
양보하는 건 사실 소용없다. 눈치만 보는 것이 될 뿐.
아이들은 무엇이든 세 번을 넘기기 힘들다. 아주 유별한 경우만 아니면 젖떼는 것도
한 삼 일만 고생하면 떨어진다. 아무리 황소고집이라도 딱 세 번만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걸 보여주면 더 이상 막무가내로 고집 부리는 일엔 힘이 없어진다.
나도 소미에게 해 보았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하다는 걸 경험으로 알았다. 그런 것을
터득하는 것은 때론 어른들보다 아이가 더 영리하다.
하긴 우리 집도 소은이의 기질이나 고집이 만만찮은 걸 점점 더 피부로 느끼니 큰
소리칠 일이 아니다. 아주 뒤로 넘어가며 우는 일도 예사니 나 역시 입 찬 소리는
여기서 그칠 일이다.
*도훈이의 발. 소미보다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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