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뼘 성장드라마
불행 당한 아이 본문
일과성 고관절 활액막염
- 10세 이하 소아에게 주로 발생하는 비특이성 염증질환
- 고관절 동통, 슬관절 동통, 고관절 운동제한, 미열
- 보통 증상이 평균 10일 정도 지속되며 4주이내 거의 대부분 소실된다.
- 검사 : 혈액학적 검사 및 단순 방사선사진, 초음파 검사, 골주사(동위원소 검사)
- 치료 : 특별한 치료 없이도 후유증 없이 저절로 치유되는 경우가 많으나, 동통이 소실되고 관절운동이 안전히 회복될 때까지 체중부하를 금하고 침상안정가료를 하는 것이다. 그 외에 진통소염제의 투여도 도움이 된다.
소은이가 지난 토요일 종합병원인 S의료원 응급실에서 이 병의 진단을 받았다. 금요일 오후부터 다리가 아프다고 하더니 저녁 무렵엔 완전히 걷지를 못했다. 정말 막연하고도 심각한 이런 증상이 갑자기 찾아오는데, 밤중에 다리가 쑤신다며 잠을 설치는 성장통도 이렇게 걷지 못하는 지경까지 된다는 소리를 듣지 못한 터라 참 당황스러웠다.
나는 어두워진 저녁이라 다음 날 오전에 병원에 가보자 하는데, 남편은 이미 아주 안 좋은 상황까지 생각이 가 닿은 모양이었다. 이 사람 스타일이 이런 때는 나보다도 더 편하게 잠잘 수 없는 사람이다. 요즘엔 건강하게 잘 자라던 아이들에게도 갑작스럽게 희귀질환이 오는 경우도 많으나 나는 거기까지 생각하지 않고 남편의 걱정보다는 조금은 느긋했다.(간이 부은 엄마~)
그래서 10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었지만 일단 평소 아는 소아과 선생님께 전화를 해보았다. 무작정 응급실부터 가면 애가 더 괜하게 고생만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권선생님은 먼저 저 병의 진단을 조심스럽게 내리면서 짧게는 2~3일, 길면 1주일 정도 통증이 있다가 저절로 없어진다고 했다. 그러니 너무 지나치게 걱정하지 말고 일단 집에 있는 소염진통제를 먹여 재운 후 다음날 가까운 소아과부터 가보라 권하셨다. 우리 부부는 한결 마음을 놓고 그날 밤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다음날 오전 남편이 소은이를 데리고 소아과를 갔고, 나는 토요일이라 일찍 돌아올 소미를 기다리며 집안일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가까운 소아과를 간 남편이 전화를 해왔다.
“이 의사는 왜 이렇게 겁 주냐? 자기는 책임지고 싶지 않다...는 소리로 들려. 이런 경우 저런 경우를 다 들추어내어 이야기하는데 ‘마비’까지 이야기한다. 토요일이니까 응급실이라도 가래.”
그래서 남편은 아이 데리고 응급실로 가고 나는 택시를 타고 쫓아갔다. 남편은 소미 때문에 집으로 가고 내가 소은이와 함께 있기로 했다. 그런데 그 종합병원의 응급실이라는 곳. 정말 갈 곳이 못 된다. 접수 하고 “이름 부를 때까지 기다리세요”해서 기다리고 “피 검사 하세요”하고 기다리고 “엑스레이 찍으세요” 해서 사진 찍고 한 시간 기다리니 “다른 자세로 두 장만 더 찍을 게요”해서 찍고 또 기다리고 “두 장 찍으라고 했더니 방사선과에서 한 장만 찍었네요. 한 장만 더 찍을게요”해서 또 찍었다. “정형외과 선생님 오실 때까지 기다려주세요” 기다려 거의 네 시간 만에 아주 젊은 의사를 만났다.
고관절(엉덩이뼈와 다리뼈를 잇는 뼈라고 알고 있다)에 문제가 생긴 것 같은데 피검사나 엑스레이 사진으로는 큰 문제가 없다고 했다. 고관절질환 중에 나타나는 병중에 아무것도 해당사항이 없을 때 저 ‘일과성 고관절 활액막염’이라는 진단을 내린다고 하니 참 애매하긴 하다. 일 주일간 유치원도 보내지 말고 한 발짝도 걷지 못하게 해라, 2주 동안은 아주 살살만 걷게 해라, 하는데 나는 그게 더 문제였다.
이미 소은이는 세 번째 엑스레이를 찍고 기다릴 때부터 내 손을 잡고 한두 발 걸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벌써 ‘저절로 치유’ 중이었다. 나는 의사 만나기 전부터 이거 완전히 꾀병처럼 보이는구나 싶어 헛웃음이 나오는데 증상이 악화되지 않고 좋아지니 마음이 어찌나 가벼운지 몰랐다.
그런데 소은이는 네 시간 종안 응급실에 붙들려서 걷지도 못하고 괴로웠는데 다시 1주일 동안 유치원도 못 가고 화장실도 엄마가 안아서 데려다 주라 하니 아이는 피검사를 위해 바늘 찔러 넣을 때도 꿈쩍도 안 하더니 그 소리를 듣자마자 눈물을 쏟으면서 막 울기 시작했다.
“으앙~ 난 불행 당한 아이야. 어떻게 일주일 동안 걷지도 못해에~ 이제 좀 걸을 수 있겠는데… 유치원도 못 가고 화장실도 안아줘야 가고… 답답해서 어떻게 해에~ 으어엉~”
의사는 피식 웃었지만 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고 우리는 소염진통제 타이레놀 시럽 한 병 달랑 처방 받아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면서 병의 진단결과도 알려드리고 감사인사도 할 겸 권선생님께 전화를 했다.
“제 말대로 그렇지요? 이제 너무 걱정 마세요. 저절로 좋아집니다.”
“의사는 꼼짝 말고 일주일을 데리고 있으라는데요.”
“아이들이 어디 그럴 수가 있나요? 다리가 나아지고 걸을 수가 있는데… 다만 무리하게 다리를 쓰거나 뛰지만 못하게 하세요.”
응급실에서 월요일에 외래진료를 예약 해놓은 상태라 다시 엑스레이 한 번 더 찍고 소아정형외과 선생님을 만났는데 그 선생님은 몇 마디 하지 않는다.
“괜찮습니다. 일주일 집에서 쉬게 하시고 다음 주에도 계속 아프다거나 더 아프다고 하면 그때 초음파나 MRI를 찍어보죠. 그러나 아이가 아무 이상 없이 잘 놀고 유치원 잘 다니면 이거 잊어버리세요.”
"누워만 있어야 하나요?"
“그냥 무리하지만 않게.”
그래서 우리 소은이 일주일 째 집에서 ‘침상안정가료’는 아니지만 암튼 잘 놀고 있다. 체중부하를 금하라 하지만 에너지 넘치는 이 아이에게 어디 가능한 일인가. 그 토요일 저녁 우리는 이미 약속이 있던 춘천으로 갔다. 지난 여름 이사를 간 솜손의 친구 집에 간 것이다. 몇 주 전부터 한 약속을 아이들이 목을 매며 기다린 터라 안 갈 수가 없었다. 닭갈비 맛있게 먹고 남편과 내가 번갈아 안고 엎고 다니다가 때로는 조금 걷게 하다가 그렇게 놀았다.
일주일 내내 엄마를 독점하면서 오붓하게 책도 많이 읽고 요기조기 차타고 잘 다니던 소은이 행복에 겨워 한다는 소리가 더 웃기다.
“엄마, 난 불행 당한 아이가 아니라 축복 당한 아이예요.”
*춘천 애니메이션 박물관에서 네 친구. 하현,양호,소미,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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