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뼘 성장드라마

작은 학교가 좋다 본문

두번째 울타리

작은 학교가 좋다

M.미카엘라 2004. 3. 5. 12:47
 

 *****

 요즘 집에서 콩나물을 기르고 있다. 일주일 동안 외출을 한 번도 하지 않고 지낼 정도로 집에 잘 붙어있는 나는 콩나물 기르기에 적임자다. 콩나물은 다른 건 필요 없지만 물을 아주 자주 주어야 하는 녀석들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 콩나물 콩은 일찍부터 친정 올케언니가 주셔서 받아다 놓은 것인데 냉장고 채소박스에서 한해를 묵었다. 이렇게 묵힌 것이 잘 자랄까 염려하면서도 어차피 버리게 될 거라면 한번 길러나보고 버리자 했다. 생긴 것은 똘똘하게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니 자신감도 은근히 생겼다.

 

 기르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예전에 엄마가 기르시던 방법대로라면 검고 깊은 넉넉한 떡시루가 좋겠지만 아쉬운 대로 중간 크기의 좀 깊은 플라스틱 바구니를 얻어다가 하룻밤 동안 불린 콩을 담았다. 그리고 그 바구니 전체가 들어갈 정도의 검정 비닐봉지를 찾아서, 바닥부분을 바구니 바닥보다 조금 작게 동그랗게 자른다. 그런 다음 콩이 든 바구니를 그 봉지에 넣고 물을 한번 뿌려준 후 입구를 슬쩍 묶어서 얇은 보자기 같은 것을 살짝 덮었다. 그리고 밑에 물이 떨어지지 않게 다른 그릇을 하나 받혀서 실내 한쪽에 잘 두면 된다.

 

 물은 밤에는 어쩔 수 없다 해도 낮만큼은 두세 시간마다 한번씩 주는데 수도꼭지를 샤워기능으로 해서 쫙 한번 뿌려준다. 또 왜 검정 비닐봉지여야 하냐면 빛이 들어가면 콩이 싹은 나도 노랗지 않고 푸르스름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물을 자주 주지 않으면 잘 자라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콩나물에 잔뿌리가 많아져서 질 좋은 콩나물을 먹을 수가 없다.

 

 다행이 지금 내 콩나물은 싹이 나서 잘 자라고 있다. 좀 아쉬운 건 바구니에 견주어 콩이 좀 많지 않았나 싶은 것뿐이다. 지금 약 3~4센티 정도 자랐는데 한 2,3일 후면 한 차례 수확(?)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이웃에 사는 태곤이네와 혜원이네를 조금씩 주기로  했으니 폼나고 맛나게 잘 자라줘야 할 텐데…. 생각난 김에 콩나물에 물이나 한 차례 주고 다시 글을 이어가야겠다.


 *****

 소미는 지난 3월 2일 쌀쌀한 날씨 속에 드디어 초등학생이 되었다. 소미의 학교는 도시에서 보기 드문 작은 학교다. 각 학년이 한 반씩밖에 없는 학교인데 이번 신입생부터 아이들이 조금 많아져 두 반이 되었다. 들리는 말로는 이 지역이 오래 개발제한구역이었는데 그 규제가 풀리면서 주택을 짓기 쉬워졌고 그래서 인구유입이 많아졌다 한다. 학교 뒤쪽은 산이고 주변으로 아직 아파트는 한 채도 보이지 않고 예쁜 다가구 주택 지붕만 보인다. 학교는 개교한 지 꽤 되었고 비록 한 반씩 밖에 없었지만 졸업생도 10년 훌쩍 넘게 배출했다. 더구나 학교건물을 신축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깨끗했다.

 

 학교에 대해서 선택의 여지는 많았다. 가만히 있으면 지금의 학교에서 취학통지서가 나오지만, 서울과 맞닿은 곳이다 보니 어찌어찌 슬쩍(알아서 생각하시길) 부지런을 떨면 서울 소재의 큰 학교에 보낼 수도 있었다. 대부분 이 아파트 아이들은 서울에 있는 학교를 다닌다. 하지만 난 학교가 마음에 든다. 나 역시 2반까지만 있었던 시골학교를 졸업했는데 담임선생님이고 아니고를 떠나 학교 선생님들이 거의 학생 이름을 다 알고 계셨고 자연스럽게 가족 같은 분위기로 지냈던 기억이 난다. 어릴 때부터 큰물에서 경쟁하면서 단련이 되며 커야 하지 않겠느냐 하는 분도 계시지만 초등학교 때 길러야 할 중요한 심성이 ‘경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세히 모르지만 요즘 같은 정보화시대에 막연히 작은 학교라고 해서 교육의 질이 큰 학교보다 조금 쳐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편견이 아닐까.

 

 소미는 조금 두렵고 긴장하는 듯 보였으나 6학년 언니들의 환영사까지 듣는 입학식을 잘 치르고 1학년 2반이 되었다. 신입생 55명에 한 반이 27~28명쯤이다. 입학식이 시작되었을 때 애국가 제창에 맞춰 지휘를 하셨던 선생님이 소미의 담임선생님이 되셨다. 키가 자그마한 여선생님이신데 40대 중반쯤으로 인자해 보였다.

 “엄마, 하느님이 제 소원 들어주셨어요. 입학식 할 때 저기 지휘하시는 선생님이 우리 선생님 되게 해달라고 했거든요. 근데 진짜 우리 선생님이 되신 거예요.”

 “그래? 와! 정말 잘 됐네. 잘됐다. 근데 왜에?”

 “음악을 잘 가르쳐주실 선생님 같아서요.”

 

 고물고물한 1학년 아이들은 각 교실로 옮겨와서는 신기한 듯 즐거운 듯 재잘대고 웃고 아주 난리였다. 나는 이런 때 관찰하기를 아주 좋아한다. 부모들은 저마다 제 아이와 눈을 맞추고 대견한 듯 흐뭇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책상에 앉은 아이들은 나름대로 색깔이 잘 드러났다. 만난 지 얼마 되었다고 벌써 뒷자리 친구와 소곤소곤 이야기에 여념 없는 소미 옆자리 아이, 활발하게 벌써 온몸으로 말하는 아이, 자꾸 엄마 쪽만 눈길을 주는 아이, 각각 성격도 보이고 표정도 달랐다.

 

 그 중 긴장하며 바른 자세로 앞만 보고 얌전히 선생님을 기다리는 ‘범생이과’로 보이는 몇몇 아이들 가운데 소미가 있었다. 요즘 같은 개성시대에 범생이는 재미없는데 진짜 범생인지 아닌지는 좀더 두고 볼 일이지만 현재 자세만은 ‘범생이’였다. 

 

 그 중 유난히 튀는 아이가 내 시선을 잡았다. 문 앞에 붙은 신입생 명단에서 자기 이름이 다르게 표기되었다고 목소리에 힘을 주며 옆자리 아이에게 말하던 남자 아이였다. 역시 그 아이는 선생님이 들어 오시자마자 저기 써있는 내 이름이 다르다, 내 이름은 뭔데 뭐라고 잘못 써있었다 하고 선생님께 말을 했다. 목에 거는 명찰을 나눠주시는데 다시 한번 잘못 쓰인 명찰을 짚고 넘어간 건 말할 것도 없다. 또 선생님이 아이들이 평소 좋아하지 않는 나물류가 제법 많은 급식의 식단을 설명하시면서 1학년은 일단 3월 급식을 안 하기로 했다는 말씀에 그 녀석은 다시 “저 나물 잘 먹어요. 나물 많이 주세요” 한다. 고 녀석 똘똘하고 이쁜 거….

 

 나는 소미가 앉아있는 이 1학년 2반 아이들을 보면서 집에 두고 온 콩나물 생각이 났다. 아이들이 자주 물을 주어야 곧게 잘 자라는 바구니 속 콩나물 같다. 이제 막 학교생활을 시작한 아이들에게 자주자주 관심을 갖고 사랑하고 이해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일은 시원한 샤워꼭지 속에서 나오는 물줄기와 같고. 학교에서 선생님이 아무리 물을 잘 주신다 한들 집에서 게을리 물을 주는 일은 요 이쁜 콩나물들 뿌리에 쓸데없는 잔뿌리를 기르고 말 것이다.

 

 “학교 재미없지? 오늘은 그나마 입학식 이런 거 해서 재미있는 거야. 내일부턴 진짜 재미없다 너. 이제 어쩔래?”

 “○○야. 너네 반 여자 애들 중에서 누가 제일 섹시하디?”

 입학한 1학년 아이에게 이렇게 말하는 엄마들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어깨가 가볍고 학교생활이 즐거워야 선생님이 주시는 물도 달게 느껴질 것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아이 앞에서 친구나 선생님을 존중해야 학교에서 뿌려주는 물이 약수가 될 것이다.

 

 난 일단 소미의 의견을 들어 피아노 레슨도 접게 했다. 그냥 학교에 가는 일이 즐겁길 바랄 뿐이며 다른 것은 필요 없다. 입학식을 마친 지금도 여전히 학부모가 된 것이 실감나지 않아 소감을 묻는 사람들에게 시원하게 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자식을 기르는 일이 내 사적인 삶 안에만 머물지 않고, 조금은 공적인 책임감과 사명감 사이에서 바르게 중심을 잡아야 한다는 거창한 생각에 가슴 한쪽이 이따금씩 묵직해지는 것을 느낀다.

 

 학교에서 막 돌아온 1학년짜리 꼬맹이 소미가 가방을 내려놓으며 말한다. 

 “엄마, 난 유치원보다 학교가 더 재미있어요. 이제 유치원은 ‘유’자도 꺼내지 마시구요, 학교의 ‘학’자만 꺼내주세요.”

 

 

입학식, 소미

'두번째 울타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전적인 편지쓰기  (0) 2004.04.30
작은 고추가 맵다  (0) 2004.03.19
우린 '지금'을 사랑해!  (0) 2004.02.24
게으른 어미의 변명  (0) 2003.04.18
오렌지색 배낭 메고  (0) 2002.0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