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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정원

너희에게 역사를 전한다

M.미카엘라 2004. 3. 14. 17:26
 

 소미야. 너는 학교에서 돌아와 집으로 오르는 계단에서부터 울음소리를 들었다고 했지. 설마 그게 우리 엄마 울음소리인 줄 몰랐다며 당황했다고 나중에 내게 말했지. 네 이모도 엄마가 그렇게 우는 걸 전화를 통해 듣고는 ‘엄마가 돌아가셔도 그렇게 못 울 것이다’라고 하더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우리 예쁜 딸이 학교에 입학한 지 열 하루된 날. 엄마는 집으로 돌아온 너를 보기가 너무나 부끄러웠다. 다 큰 어른이 목 놓아 우는 모습을 들켜서 부끄러웠던 게 아니라, 텔레비전을 통해 계속해서 돌아가는 넥타이맨 남자어른들의 사투에 가까운 싸움질을 그대로 보여줘야만 했던 사실이 너무 부끄럽고 안타까웠다.

 

 소미소은아.

 편지로 역사적 사건을 너희들에게 전하는 일이 이번이 두 번째로구나. 월드컵의 함성을 기록한 이후 다시, 그것도 가장 부끄러운 역사가 될지도 모르는 오늘의 사건을 전해야 한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겁다. 어린 너희들이 무얼 알겠니. 하지만 엄마는 이 심정을 기록해야 할 것만 같은 어떤 책임감 같은 것을 가지게 되었단다. 오늘의 이 위기를 역사는 어떻게 기록할지 알 수 없지만, 나중에 너희들의 역사적 안목에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쓴다. 물론 아주 다른 시각을 가진 사람들도 많지만 우리나라가 민주주의 국가 아니니. 모두 획일적인 생각을 갖는 것도 문제일 테지. 그러나 현재 많은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는 일인 것으로 보아 엄마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듯해서 용기를 낸다.

 

 2004년 3월 12일 오전 11시 56분.

 

 소미소은아. 이것은 우리나라 생긴 이래 처음으로 대통령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날치기로 통과된 시간이란다. 막 통과 되었을 때 소미 네가 집으로 들어선 거야. 네가 놀란 얼굴로 들어서서 가방을 채 어깨에서 내려놓기도 전에 난 너를 끌어안고 울었구나.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가 있나 싶어서 분하고 억울해서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단다. 가슴이 답답하고 억장이 무너지는 아픔이 느껴졌다.

 

 소미소은아.

 이것은 정치적인 견해와는 떼어서 생각할 문제구나. 아주 상식적인 일이다. 이것을 입만 열면 국민을 대표한다는 국회의원들만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 분노를 느끼게 한다. 탄핵 발의 이후 연일 보도된 여론조사에서 70% 가까운 국민이 탄핵을 반대하는 의사를 표시했건만 그 국민의사를 완전히 무시한 일이 화가 난다는 것이다. 물론 여론조사기관도 오차가 있겠지만 그것이 전체 의견을 뒤집을 만한 오류이겠니.

 

 나는 계속 무슨 일이냐고 물어오는 네게 ‘대통령이 이름만 있고 대통령의 일을 하지 못하는 사건’이라고 설명했지. 누가 어떤 말을 어떻게 했고 누가 너무했고 누구도 이런 부분은 잘못했고 했고 하는 말들은 본질이 아니란다. 곁가지일 뿐이지. 점잖게 앉아 이 사람도 잘못했고 저 사람도 잘못했고 하는 식의 양비론이나 양시론으로는 아무것도 달라지게 할 수 없단다. 역사를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한다고 생각해. 과거의 가치관으로 보면 대단히 균형 잡힌 시각처럼 보이고 자신은 이 두 죄인과는 전혀 다른 괜찮은 사람처럼 보여서 품위를 지킬 수 있을지 모르지만, 상황은 늘 제자리다. 그렇다고 흑백논리로 나가자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히 정당성이 있는 사안에 대해선 마음이 안 드는 점이 있어도 토 달지 말고 확실히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거야. 그렇게 힘을 실어주는 사람들의 손이 역사의 바퀴를 움직인다고 생각해. 

 

 소미소은아.

 엄마와 같은 많은 사람들이 이번 사건에서 분노를 느끼는 까닭은 그 굵은 줄기가 이렇다. 부정과 부패로 얼룩진 사람들이 힘을 모아 한다는 것이 자기 모습은 살피지 않고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집권 1년 만에 자리에서 끌어내리려 한다는 것이다. 도저히 한 톨의 지지도 보낼 수가 없다. 엄마는 이것을 정치적인 눈까지 안 가더라도 상식적인 눈으로만 본다면 너 같은 아이라도 쉽게 판단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해. 남의 눈에 티끌은 보면서 자기 눈의 대들보는 보지 못하는 일이 아니냐.

 

 사실 일이 이렇게 되기까지는 조금 더 역사적이고 본질적인 문제가 따로 있지만 여기서 다 말하는 일은 어렵구나. 그리고 엄마가 아직 요즘 공부 중이다. 역사공부. 역사를 바로 보는 공부지. 우리 역사의 많은 부분을 잘못 알고 있다거나 아주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단다.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서 그 마음의 빚을 갚는다는 마음으로 더 공부해서 앞으로 너희들의 역사의식에 도움이 되도록 하고 싶은 마음이란다.

 

 소미소은아.

 어느 나라든 역사가 바로 서야 그 나라의 미래가 창창한 것이란다. 누구는 오늘의 사태를 보고 이민 가고 싶다는 사람도 있지만 엄만 부끄럽게 생각하는 마음을 이 글을 쓰면서 좀 거두게 되었단다. 아직도 우리나라의 시련은 조금 더 이어지려나 보다 한다. 그리고 정말 좋은 날이 오려고 이렇게 아직 더 아픈가보다 생각한다.

 

 어제 광화문에 7만여 명의 함성이 울렸다는 것 너도 잘 알고 있지? 엄마의 울음을 기억해다오 소미야. 그리고 어떠한 경우에도 우리나라는 쓰러지지 않아. 어떠한 경우라도 이 아픈 나라를 보듬고 나아가야 할 사람들이 강한 우리들이고 너희란다. 부디 너희들에게까지 ‘여전히’ 아픈 나라니까 병구완 잘하라고 하면서 물려주는 일은 없어야 할 텐데…… 엄마는 그게 염려되고 가슴 아프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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