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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정원

돈, 두번째 이야기

M.미카엘라 2004. 5. 10. 03:26
 

 어릴 때 우리 엄만 집에 오시는 손님이 우리 형제들에게 돈을 쥐어주는 걸 펄쩍 뛰셨다. 아예 지갑에서 돈을 꺼내지 못하게 하시는가 하면, 아주 간혹 주신 돈을 기어코 돌려주실 때도 있었다. 애들 어릴 때부터 돈 줘버릇 하면 못쓴다고 초등학생일 때까지는 특히 주의를 기울이셨다.

 

 “이거 받으면… 저 엄마한테 혼나요.”

 이게 엄마 안 보는 데서 돈을 주시는 손님들께 응대하는 우리들의 고정 레퍼토리였다. 그래서 어쩌다 우리들이 할 수 없이 받은 큰 돈(액수와 관계없이 지폐는 모두)은 엄마가 뭐라고 하지 않으셔도 엄마께 드리는 일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또 우리 집은 형제들이 자랄 때 세배돈이라는 게 없었다. 설날 아침은 세배를 드리는 것도 당연하고 세배돈을 받지 않는 것도 당연했다. 살림이 어렵기도 했지만 아버지 엄마의 방침이 그러하셨던 것 같다. 새배돈이 생긴 건 큰오빠가 결혼하고 조카들이 태어난 이후다. 우리 아버지, 엄마에게도 역시 손주들은 자식과 달랐다. 형제 중 막내였던 나는 조카들과 끼어 붙어서 한두 번 받은 기억이 있지만 그렇다고 절대 큰 돈을 주시는 일은 없었다. 아주 조금, 과자 서너 봉지나 연필 몇 자루 정도 살 돈을 주신 걸로 기억한다.

 

 가풍이 좀 야박하다 싶을지 모르지만 암튼 어린시절 나는 돈에 대해서는 그런 분위기에서 자랐다. 그렇다보니 아무리 친정 엄마와는 다르게 애들을 기르고 또 다른 시대 분위기가 있다고 해도 나도 모르게 큰돈을 덥썩 주는 어른들에게 손사래부터 하는 버릇이 있다. 굳이 애들 손에 쥐어주고 마는 어른들을 보면 그 옛날 우리 엄마처럼 민망하고 송구한 마음에 자꾸 고개를 조아리게 된다.

 

 그런데 어린이날을 거치면서 소미, 소은이는 그야말로 어른들로부터 돈을 짭짤하게 받았다. 어버이날 친정에 갈 형편이 아니었던 터라 어린이날 갔었기 때문이다. 친정집 가까이 사는 작은 오빠가 생일이어서 케이크도 하나 사들고 두루두루 뵈었는데 큰올케, 작은올케, 큰언니까지 아이들에게 덥썩덥썩 시퍼런 만 원짜리를 쥐어주셨다. 시골 동네에서 갑자기 들이닥친 조카들에게 어린이날이라고 해도 줄 것이 없다며. 아이들은 저희들 딴엔 잘한다고 바로 직행하여 내게 돈을 맡기는데, 그걸 준 사람 코앞에서 엉거주춤 받아든 내 손이 잠시 황망했다.

 

 그리고 어제 일요일에 어머님을 모시고 온 식구가 제천의 한 신부님을 뵈러 갔었다. 소미와 소은이는 지난 겨울에 뵌 신부님께 드릴 편지와 그림을 정성스레 준비하느라 전날 늦게까지 잠을 설치고, 점심식사를 하면서는 신부님 앞에서 근사하게 동요도 한 곡조씩 뽑았다. 그랬는데 신부님이 “애들한테 돈 주는 일은 처음이다. 근데 참 노래를 잘하는구나. 자, 노래값이다!”하시면서 만 원짜리를 또 하나씩 주셨다. 소미는 내게 맡기지 않았다. 나를 떠보겠다는 심사였는지 진짜였는지 자기가 사고 싶은 거 맘대로 사겠다고 신부님 앞에서 말했다. 난 그냥 이따가 이야기하자고만 해두었다.

 

 그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며 어머님을 시누이 집에 모셔다 드리러 갔다. 거기서 다시 시누이가 “고모가 어린이날에 아무것도 준비 못했다”며 또 만 원짜리 한 장씩을 주었다.

 “아이구, 무슨 돈이예요 맨날. 나도 그럼 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잖아요. 도연이 도훈이에게도 줘야지. 그러니까 우리 그냥 서로 안 주고 안 받기로 해요. 아니면 서로 받은 걸로 하던가요. 네? 돈 주지 마세요.”

 

 어린이날도 지났고 어린 애들이 뭐 그때 안 받은 걸 뭐 그리 기억하랴 싶었지만 시누이는 그렇게 했다. 나는 받는 일도 익숙하지 않지만 애들에게 돈을 주는 일도 익숙하지 않다. 아예 돈을 주는 일에 생각이 미치지 못한다.  결혼 이후 시댁의 분위기는 우리 집과 사뭇 달라 세배를 하면 다 큰 자식들에게까지 세배돈을 준비하시는 어른들을 뵈었다. 세배돈 받는 일이 꽤 좋은 기분이었고 이런 가풍이 새삼스레 신기하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집안에서 애들한테 무슨 때 되면 돈 주는 일이 그냥 자연스럽다. 그래서 시누이나 아주버님이 소미 소은이에게 돈을 주는 일이 제법 많았는데, 나는 시누이의 두 아이들(둘 다 소미 소은이와 동갑내기다)에게 돈을 준 기억이 한 두어 번 될까 말까 한다. 나는 줄 생각을 아예 못하고 있는데 그것도 남편이 옆구리를 찔러서.

 

 소미 소은이는 노는 데 정신 팔려서 고모에게 받은 돈을 금방 내게 맡겼고 나는 바지 뒷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돌아올 때 그냥 돌아오려니 아무래도 뒤통수가 뜨뜻했다. 특히 어머님이 내가 그냥 갈까봐 신경 쓰실 것을 알고 있었다. 나도 돈밖에 다른 것을 줄 것이 없었다. 어린이날 선물을 준비 못한 탓, 시누이가 먼저 선수를 친 덕분에 돈을 주려고 지갑을 열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지갑에는 딱 만 원짜리 하나밖에 없는 거다. 먼 길을 오가며 현금을 많이 쓴 탓에 돈이 없었다.

 

 그런데 이미 돈을 꺼내는 제스추어를 시작한 뒤여서 참 난감했다. 나는 순간 뒷주머니에 손이 갔고, 결국 시누이가 준 돈을 도로 주고 만 셈이 되었다. 지갑에서 꺼낸 것처럼 하면서 주었지만 입맛이 여간 씁쓸한 것이 아니었다. 신부님이 주신 돈을 가방의 다른 주머니에 따로 두었는데 그걸 꺼내주었으면 좀 나았으려나? 그건 모르겠다.

 

 ‘에그머니~ 이게 모야?’하는 생각이 들었다. 애들에게 ‘어린이날 집안행사’를 마친 것이 되었으니 그것으로 만족하면 될까? 그래도 ‘고모와 외숙모의 마음이 서로 전달된 것이니 된 거다’라고 생각하면 될 것을 너무 따지는 건가?

 

 “에이, 뭘 줘!”

 어머니와 시누이 웃으시며 그냥 해보시는 말씀.

 “아이, 저도 그냥 갈 수 없죠. 그러니까 그냥 두시자니까요. 서로 받은 걸로 하시구요. 애들은 다 잊구 있는데요, 뭘!”

 나도 그냥 할 말이 없어서 그렇게 받았다. 그런데 갑자기 어머님이 확 역정이 나신 목소리로 쏘아붙이시는 게 아닌가.

 “어우, 얘! 너 그래도 그게 아니다.… 그러믄 안 되지. 넌 그런 게 없어 애가…”

 

 난 순간 얼굴이 뜨거웠다. 그 말씀 속엔 평소 표현하지 않은 것이 분명한 서운한 감정이 역력하게 묻어있었기 때문이다. 내게 없는 ‘그런 게’ 뭘까? 돌아오는 차 안에서 생각했다. 곰곰이 생각하니 받기만 하고 본의 아니게 인색하게 굴었던 것, 어른들 보시기에 체면 살고 폼나게 인사치레하는 것, 이런 것을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앞서 말한 대로 난 소미의 고모나 고모부가 여러 차례 애들에게 돈을 주었는데도 다시 도연이 도훈이에게 즉시 보답할 줄 몰랐다.

 

 또 시누이가 마음이나 뭐나 넉넉한 시댁 어른들께 받은 농산물이나 식품류, 또 이렇게 저렇게 생긴 것들을 남동생네라고 이것저것 잘 나눠주고 챙겨주는데, 나는 제대로 뭘 그때그때 바로 감사를 표하지 못했다. 여기로 이사 와서는 가까이 산다고 빈손으로 갈 때도 있었다. 시누이처럼 집에 있는 걸로 드릴만한 게 있지도 않았고, 바로 집 앞에 차를 대니 때마다 다시 과일이라도 사러 수퍼에 가게 되지 않았다. 그래도 나 나름대로 한다고 하기도 했지만 그런 것들이 어머님 눈에 영 부족해보였는데 애들한테 돈 한 푼 주면서 말이 많다 하셨던 거 같다. 어머님은 형식적이든 뭐든 그래도 서로 행사 챙기고 이런 거 중요하게 여기시니, 돈이 되었든 다른 뭐가 되었든 그때그때 보답했어야 했다는 것을 알았다. 

 

 이그, 결혼 10년째다. 그냥 좋게 “도연아, 책이라도 사 보거라” 한 마디 했으면 되었을 것을 괜한 소리 해가지고 돌아오는 내내 내 마음만 상했다. 집안 분위기 익히 아는 터, 고모 마음인데 뭘 갑자기 그리 꼿꼿하게 굴었을까 싶은 게 후회도 되었다. 돈으로 주고 싶지 않았으면 뒤통수 뜨거워도 일단 그냥 집을 나온 후, 다음에 작은 것으로 선물할 마음먹었으면 되었을 것을. 나도 참 나다.

 

 요즘 애들에겐 어른들이 주는 돈도 크고, 학용품도 넘치고(도연이는 책가방을 무려 세 개나 두고 쓰고 있었다), 공부할 것도 넘치고 또 넘친다. 물론 어느 집이나 그 큰돈을 어린이들이 혼자 어찌하는 경우는 없을 것인데, 난 오늘 좀 별나게 굴다가 하루 종일 잘 지낸 끝에 흠을 남기고 말았다.

 

 나의 돈에 대한 이런 태도가 잘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아직 내 나름대로 돈을 가르치는데 이렇다할 기준 없이 어릴 때 내 생각만 하고 이러는 것이 사실이다. 어릴 때부터 돈을 가르쳐야 한다, 경제적인 아이로 키우자 하는 시대에 말이다. 그런데 돌아오면서 한 가지 결심은 했다. 늘 들고 다니는 가방 안에 도서상품권 서너 장을 떨어뜨리지 말고 준비해서 가지고 다니자고. 그래서 준비 없이 찾아간 집에 어린이가 있다면 그 상품권으로 선물을 대신하자고.

 

웃음, 깔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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