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뼘 성장드라마
우리 동네를 소개합니다 본문
하늘이 낮게 내려앉았다. 커튼을 채 달지 못한 거실을 온통 쨍하게 비춰대던 햇빛이 오늘은 한풀 꺾였다 싶었는데 오후가 되니 더 흐려진다. 눈이라도 내릴 것 같은데 이제 너무 많지 않게 좀 내려주어도 좋겠다 싶은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이사를 해놓고 3일 만에 바싹 짐 정리하고, 밀린 빨래를 해서 주욱 널어놓고, 아이들 어머님 댁에서 데려오고, 마감일을 넘긴 일을 부랴부랴 해서 보내놓고 나니, 이제 블로그에 새 글만 올리면 진짜 “이사 끝~”소리 할 수 있겠다.
여긴 용인이다. 본래의 용인시가지 한 편에 우리 집이 있다. 내가 군인의 아내가 된 후 대구, 인제, 장호원, 철원, 성남을 거쳐 여섯 번째 삶의 터전이 되는 곳이다. 그런데 나는 일찍이 군인가족이 된 이후로 이런 환경에선 거의 처음 살아본다. 걸어서 웬만한 일이 다 해결되는 동네이니, 이런 호사가 어디 있을까 싶은 게 이제 이사 온 지 일 주일 되어놓고 벌써 ‘살 만하다’고 생각한다. 늘 애매하게 외진 동네에 있던 군인아파트는 대부분 차를 타고 나가야 해결되는 일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나 같은 겁쟁이가 운전을 배워 차를 굴리고 다닐 정도면 (아직도 내 친구 중 몇몇은 내가 운전하는 일을 대단히 신기해한다) 그 불편을 감당할 재주가 따로 없었던 덕분이 크다.
일단 소미와 소은이는 소원 성취했다. 학교가 가깝다. 지난 번 학교보다 3배 정도는 큰 학교지만 건물도 깨끔하고 아이들이 운동 삼아 걷기에 좋은 거리여서 무엇보다 마음에 든다. 소미는 차를 타지 않고 걸어갈 학교를 만났으면 좋겠다고 노래를 불렀는데 이렇게 가까이에 학교가 있으니 환호성이 저절로 나오는 모양이었다. 참 다행이다. 지난 학교와 친구들에 대한 애정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아이라, 겉에서 보는 학교 건물이 되었든, 가까운 거리가 되었든 아이의 마음에 드는 무엇인가가 꼭 있길 바랬는데, 그 부분에선 일단 합격점 안에 드는 듯하다.
그리고 주변에 문구점이나 세탁소 같은 생활에 필요한 상점이 많고 가까운 곳에 지난 12월 대형할인점이 문을 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할인점 아래 내 눈에 유난히 반짝반짝 빛이 나는 건물이 하나 있으니 시립도서관이다. 도서관 가까이에 다 살아보다니 우리 세 모녀는 꿈이 아닌가 하면서 손잡고 좋아했다. 이 모든 것들이 운동 삼아 걷기에 딱 좋은 거리에 있으니 호박에 넝쿨째 들어온 새해구나 생각한다.
어제 여기 와서 첫 일요일을 맞았고 아이들이 어머님 댁에서 돌아와서 주변 구경도 할 겸 첫 외출을 했다. 남편이 차를 덥혀놓겠다고 먼저 나갔는데 뒤따라 나갔더니 남편은 조금 전에 아파트 앞에서 본 광경을 이야기했다. 어떤 차가 들어와 주차를 하는데 이 군인아파트를 찾아 외부에서 온 방문객 같더란다. 뒷좌석에서 두어 명의 아이들이 내리는데, 소은이 또래의 한 아이가 내리자마자 아파트를 휘익 보더니 ‘어후, 이 아파트는 귀신 나올 거 같애!’ 이러더란다. 남편은 요즘 아이 눈으로 보면 별로 틀린 말도 아니다 싶어 속으로 낄낄 웃었단다.
뭐 귀신 나올 거 같으면 어떠랴. 그래도 귀신은 안 나온다. 문틀이며 문, 베란다 벽을 깨끗이 칠하고, 싱크대 수납장 시트지 붙이고, 종일 청소하여 살만하게 만들어놓고 들어와 정리 정돈하니 또 그럭저럭 괜찮다. 이 추운 겨울 다 옮겨놓고 ‘내 집이다’ 맘 먹으니 여전히 비좁지만 또 금방 적응된다. 아이들에게 붙박이장이 달린 큰 방 주고, 우리 부부가 쓰던 침대 넣어주고 책이며 장난감 모두 그리로 놓아주니 통 그 방에서 나올 줄 모르고 재미가 있는 눈치다. 일단 난장판이 되든 무슨 일을 꾸미든 거기서 다 해결을 하니 다른 곳을 안 어질러 너무 좋다. 가끔 붙박이장에 있는 장난감 다 꺼내놓고 그 안에 이불 깔고 은밀한 놀이공간을 만드니 방밖으로 나올 틈이 없다. 소미는 이전 집에서보다 훨씬 커진 자기들 방을 잘 정리해놓고 대전에서 데리고 왔더니, 그 방 어질러지는 것도 아까운지 자주 정리하고 소은이에게도 치우라고 잔소리한다.
그러나 이 아파트가 무엇보다 나를 감동시키는 것이 하나 있으니 바닥이다. 외풍은 조금 있지만 지난 번 집보다 덜하고 무엇보다 온돌방 구들처럼 짤짤 끓는 방바닥이 너무 좋다. 아파트가 이러기 쉽지 않은데 특히 거실 쪽 바닥이 아주 따끈따끈 해서 낮에는 엉덩이가 해 지면 시린 내 등이 행복한 비명이다.
이사 잘했느냐고 걱정해주신 분들이 참 많았는데 여러분께 참으로 감사드린다. 우리나라 통신서비스가 좋아 (통신 서비스뿐이랴. 우리나라 애프터서비스는 끝내준다. 그 모든 것들의 설치와 수리가 다음날로 완전하게 끝났다) 인터넷 접속이 진즉에 가능했음에도 제때 답글을 달지 못했다. 새로운 글로 그간의 사정을 이해해주시리라 믿고 올 한해도 그 분들에게 두루 좋은 일 많으시라고 빌어드린다. 나는 이제 비로소 새해가 시작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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