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뼘 성장드라마
즐거운 이사를 위하여 본문
오늘, 새 집 열쇠가 드디어 내 손 안에 들어왔다. 이제 정말 이사를 간다. 오래 이리저리 끌다가 기다리고 연기하길 몇 차례, 차라리 제 날짜에 이사를 갔으면 지금쯤은 편안하고 아늑한 느낌으로 연말 기분을 낼 텐데 하는 생각을 했다. ‘어, 아직 이사 안 하셨어요?’하는 인사 듣는 일도 민망하고, 궁금해 하는 사람들을 위해 자꾸 바뀌면서도 뭐 하나 확실하지 않은 상황을 설명해야 하는 일이 슬슬 스트레스가 되는 중이었다. 그러나 그 동안 나는 감기가 심하게 들어 지금까지 열흘을 넘게 힘겨워하면서 이렇게 아프니, 좀 회복된 후에 이사하라는 의미인가보다 느긋하게 마음먹어왔다.
남편은 하루에 한 통화하기도 힘들 정도로 바쁜 눈치이고, 크리스마스 이브에 너댓 시간 정도 시간을 내어 만났을 때도 ‘얼굴이 쪼옥 빠졌네’ 했더니 몸무게가 4킬로나 줄었다고 했다. 그 소리를 듣고 이사 갈 때까지 투정하지 말고, 짜증 내지 말고, 내가 알아서 차근차근 알아보고 준비하여 이사하자, 속으로 생각했다. 이것이 사실 나 같은 사람이 군인가족으로서 할 수 있는 내조의 전부다.
열쇠를 쥐고 집으로 돌아와 새 동네에 같이 가준 언니와 차를 마시다보니 문과 문 사이 좁은 틈에 소미소은이가 여기 살면서 3년 동안 키재기를 한 표시들이 눈에 들어왔다. 애들이 무슨 콩나물인줄 아는지 아침에 재고도 저녁에 또 '얼마나 컸나보자 딸들~' 이러면서 아이들을 불러세우던 남편의 글씨들과 아이들의 손때가 묻어 고색창연(?)하다. 이것이 아이들의 유년기 3년 역사를 말해주는 하나의 징표려니 하니 곧 찡해지는데, 의미가 없어도 찍어서 의미를 만드는 피사체 포착의 귀재인 우리 언니 ‘저거 찍어둬’ 한다. 그래서 찍었다.
꼭 3년이다. 뜨거운 월드컵의 해를 철원에서 살고서, 2003년 1월 5일 우리 식구는 이곳으로 이사 왔었다. 어느 방도 열 자 장롱이 나란히 들어가지 않는 13평 아파트에서 3년 동안 살면서 우리 소미와 소은이는 유치원을 다니고 소미는 입학했고 2학년을 마쳤다. 종업식을 하진 못했지만 2학년 과정의 중요한 부분을 여기서 다 마쳤다. 아이들은 키만 큰 것이 아니라 마음도 쑥쑥 자라면서 더러 옹글게 열매 맺은 듯한 마음도 자주 보여주었다. 나는 그 시간들을 기록하면서 즐겁고 행복했다. 지금 생각하면 ‘속기’를 했다는 느낌이다. 아이들의 일상을, 언어를, 쉼 없이 기록하느라 여념이 없었던 속기사… 3년 동안 이곳생활은 '화려한 전입신고'라는 제목으로 시작해 119편의 글속에서 살아 숨쉰다.
군인가족의 시간이란 한 해 한 해 단위이기보다 가장의 근무지와 함께 그 단위가 나뉘는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어디서 살았던 몇 년, 어디서 살았던 몇 개월… 뭐 그런 식이다. 그런데 남편은 한 해가 가고 오는 이 시기에 대부분 전출명령이 난 편이라, 나는 다소 분주하긴 하지만 무엇인가 정리하고 새로 시작하는 마음에 저절로 남다른 획이 그어진다.
서울과 맞닿은 지점에서 산 이 성남시절은 군인아파트 밖에서 활발한 교류로 채운 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얼굴 보기 힘들었던 내 몇몇 친구나 아는 사람들과 자주 만났고, 온라인 우정을 오프라인에서 더욱 다지기도 하였고,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하기도 하였다. 소미소은이 역시 군인아파트 안팎에서 많은 어른, 친구, 언니, 동생들과 만나면서 어떻게 인사하고 어떻게 타인을 배려하고 사귀고 인연을 이어가는지, 또 받은 사랑에 대한 감사표시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 알게 모르게 많이 배웠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엄마인 나의 어설픈 네트워크 능력이 아니라도 군인의 아내나 군인아빠를 둔 아이들은 원치 않아도 ‘어디서든 적응 잘하고 사람 잘 사귀기’를 운명처럼 훈련하며 산다고 할 수 있다. ‘운명’이라는 단어가 너무 무겁고 거창하긴 하지만 지금은 다른 단어가 잘 생각나지 않는다. 물론 군인가족으로 20년 넘게 산다 해도 잘 훈련이 되지 않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나도 적응이 좀체 안 되는 부분을 꽤 많이 가지고 있다. 서툴고 어렵고 조심스럽고 힘든 부분이 달라지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려고 한다. 이왕 이런 환경에서 내 아이들이 크고 자라야 한다면 이런 환경을 긍정적으로 이용해보자는, 뭐 그런 생각이다. 전학을 가서 새로운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나고 새 이웃들을 사귀면서는 타인과 소통하는 능력을, 새롭게 주어진 주변 환경 속에서는 그 곳의 좋은 점을 적극적으로 찾아 호기심을 가지고 교감하는 능력을 길러주고 싶은 것이다. 그럼으로써 요즘 사회인들에게 강력한 화두의 하나가 된 ‘리더십’ 뭐 그런 능력도 길러질 수 있다면 좋겠다.
흐흐, 이거 꿈보다 해몽이다. 이사를 이제 코앞에 두고 ‘환경의 권태를 모르고 사는 우리는 행복한 군인가족, 어떠한 환경에서도 꿋꿋하고 즐겁게 잘 사는 장한 대한민국 군인가족’ 이러면서 마인드콘트롤을 하는 것이다 내가 지금. 하지만 내 삶을 조롱하는 억지 마인드콘트롤은 아니다. 사실이기도 하니까.
이사를 좀더 즐겁게 하고 싶다. 2006년 1월 3일. 솜손네 식구들은 용인으로 간다. 시베리아 바람이 부는 최전방도 아니고 강원도 저 어디 골짜기도 아니어서 ‘에게~ 겨우?’ ‘피~’ 하시는 분들! 아파트 아래층으로만 이사 가려고 해도 하루 이틀이 난리인 건 어디나 똑같지 않던가? 흐흐. 그 난리를 피해서 소미와 소은이는 대전 할머니 댁으로 잠시 피난을 보낼 것이다. 지금 두 아이는 이 집에서 마지막 잠을 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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