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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논리

M.미카엘라 2001. 6. 22. 19:23
드디어 손거울과 빗을 사주었다. 토끼 캐릭터가 그려진 작은 거울과 빗이 세트로
예쁜 비닐주머니에 담겨진 그걸 나는 두 벌 샀다. 나누어 쓰고 나누어 가지고 하는
걸 늘 입이 닳도록 말해주지만 아직은 턱없다. 이것만큼은 분쟁의 소지가 너무도
불을 보듯 뻔했다. 그래서 개인소지품에 속하는 작은 물건이기도 한 이것을 두 딸들에게
각각 하나씩 안겼다.

이로써 나는 소미하고 한 약속을 일주일만에 지켰다. 친구 딸이 가진 작은 손거울이
못내 갖고 싶어 안달이 났던 소미에게 사주마하고 손가락 걸었던 약속이다. 그걸
오래도록 잘 챙길 턱이 없는 것을 잘 알면서도.

그런데 그것은 생각보다 더욱 빨리 왔다. 소미는 거울과 빗을 산 지 하루만에 모두
잃어버렸다. 빈 비닐주머니만 들고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이내 포기하면서 한다는
소리가 더욱 기가 찼다.
"에휴, 이제 내 빗이 없으니까 소은이 꺼 가져야겠다."
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고 입을 두고 그냥 지나갈 수가 없었다.

"아니, 우리 큰딸, 무슨 그런 이상한 논리가 다 있어? 네 것 잘 챙기지 못하고 잃어버려
놓고 소은이 걸 빼앗겠다는 심보야? 넌 이제 필요할 때마다 소은이에게 빌려 써야
하는 거야. 소은이 걸 가지는 게 아니라. '소은아, 언니 좀 해볼게'하면서 빌리는 건
괜찮지만 빼앗는 건 안돼. 그랬다간 엄마가 싫은 소리 할 거야. 알았지? 엄만 분명히
말했다."

남편은 옆에서 키득대고 웃었지만 난 한껏 진지하게 설교를 늘어놨다. 소미는 조금
전과 전혀 다른 태도로 꼬리를 내렸지만 그 목소리 톤은 사뭇 격앙되어 있었다.
"알아요. 내가 빌려쓴다는 말이지. 안 뺏어요."
더는 할 말 없게 입을 막는 그 소리에 남편은 또 한번 껄껄댔다.

소미는 자기 물건에 대한 애착이나 애정이 좀 없는 편이다. 갖고 싶어서 사주긴
해도 조금 지나면 잃어버려도 크게 아쉬워하지 않고 밖에 가지고 나갔다가 누가 좀
가지고 놀자하면 그대로 주고 그러다가 가버려도 그만이다.

이거 내가 뭘 너무 잘 사주고 풍족하게 해준 것도 없는데 왜 저러나 싶은 생각이
자주 들었다. 다른 아이들이 쓰던 물건을 얻어온 장난감이 많기도 많아서 뭐 크게
필요한 장난감도 없었다. 어제도 어디 갔다가 옷 갈아 입히는 인형을 사달라고 한참
졸랐는데 사주지 않았다. 다음 달이 생일이니까 그때 선물로 사주겠다고 약속하면서
달랬다.

반대로 소은이는 어려도 자기 것을 확실하게 챙긴다. 온천을 가면 꼭 탈의실의 옷장
열쇠를 달라고 조르는데 난 잃어버릴까 염려를 하면서도 준다. 소은이는 보통 한 시간
넘게 온천욕을 하는 동안 한번도 잃어버리고 나온 적이 없다. 손목에 거는 것도 아니고
손에 들고 다니면서 노는데 잠깐 옆에 놓았다가도 이내 다시 집어들어 챙기는 걸
유심히 보았다.

난 소미가 욕심쟁이가 되는 걸 원치는 않지만 자기 물건 늘 칠칠 흘리고 잃어버리고
찾아달라고 성화대고 할까봐 걱정이다. 아직 어리니까 걱정 안 해도 되는 걸까. 어리지만
이미 그런 싹을 보이는 걸까.

남편은 처음엔 소미가 욕심이 없어서 그런 거라고 그랬다. 지금은 조금 달라졌지만
소미는 더 어릴 때 집에 놀러온 누구에게도 내 것이라고 못 가지고 놀게 하거나 뺏거나
하는 적이 없었다. 이젠 어떤 아이가 부모 따라 손님으로 왔다 가면 선물로 자기
장난감 하나를 주고 싶다고 한다. 최근엔 '내꺼'에 대한 생각이 많이 자리잡아서 잘
챙기려나 싶었는데 아니다.

그런데 이제 남편은 날 닮은 것 같다고 한다. 난 그것에 이견이 있다. 분명 내가
깜빡깜빡 잊는 버릇이 두 아이를 낳고 시작된 것임을 자기도 잘 아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현금지급기에서 카드만 빼들고 돈은 그대로 둔 채 집으로 돌아온 일, 봉급날 모처럼
맛있는 것 먹자고 20분 달려서 거의 이천시내에 다다랐는데 카드고 현금이고 모두든
지갑을 놓고 와서 그대로 집으로 돌아온 일, 이 두 가지 사건이 연이어 이틀 동안
벌어졌을 땐 나도 우울증이 올 지경이었다. 내 총기는 출산 전엔 꽤 쓸만했는데.

이젠 나도 나를 못 믿을 때가 많으니 남편더러 가끔 내가 하는 일을 챙겨달라고
부탁까지 했다. 아직 젊은데 그런 말을 해야할 땐 꽤 쓸쓸했다. 하긴 남편이 농담을
반 넘게 섞어서 말한 것 인줄 안다. 그래도 두 아이 낳고 온 이러한 건망증을 내
성격인양 소미가 닮은 거라고 생각없이 몰아 부쳤을 땐 짜증이 나서 한바탕 확 쏘아 부쳤다.

아무튼 소미는 요즘 모래나 흙을 가지고 놀 때 쓸 삽이나 채 같은 것은 빠뜨리지
않고 잘 챙겨 들어온다. 한번은 흙을 담는 통을, 한번은 삽 종류를 모두 잃어버려
같이 찾으러 다니고 내가 혼을 냈던 터라 이젠 확실하게 챙긴다. 잃어버리고 다음에
찾지 않으면 모르지만 다음에 또 갖고 놀겠다고 하고 찾아달라고 징징대니 앞으로
이런 문제로 적잖이 여러 번 다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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