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뼘 성장드라마
청소도 교육이다 본문
“소미, 오늘 엄마가 본다아. 맨날 엄마가 같이 정리해주니까 같이 하다가도 어느새 쓰윽 빠지는 거 이제 안 본다. 소은이도 마찬가지야. 얼마든지 어지르며 놀아도 좋아. 치우는 것만 확실히 하면 발 딛을 틈 없이 어지르며 놀아도 엄만 불만 없어.”
그랬더니 정말 발 딛을 틈 없이 어질렀다. 소미 친구까지 놀러왔는데 온갖 조각이불 다 꺼내서 깔고, 손톱만한 장난감까지 다 꺼내고, 인형 목욕시킨다고 물 떠다가 흥건하게 만들어놓고… 여자아이 셋이서 노는 품은 거칠지 않고 사분사분 참 예쁘기도 하지만, 그 온갖 것 꺼내놓고 어지르는 데는 가만 두면 별거별거 다 물어오고 끄집어내는 철없는 강아지 다섯 마리보다 더 심하다. 그래도 난 묵묵히 아무 말 안 했다.
“엄마 이제 밖에 나가서 놀다 올게요.”
실컷 놀았는지 이제 밖으로 진출할 생각인가 본데 방이 참 한심했다.
“그래. 근데 설마 집안을 이렇게 두고 나갈 생각은 아니겠지?”
소미, 그냥 나가려는 속셈을 들켰다. 내 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그으럼요 엄마. 설마 제가 그러겠어요? …… 얘들아, 우리 같이 치우자”했다. 나는 속으로 크크 웃음이 나왔다. 어디 한번 보자 싶었다.
“엄마, 한번 보세요. 엄마가 아주 만족하실 거예요. 구석구석 다 보셔도 좋아요. 저희 나갔다 올게요.”
한참 후, 이마가 촉촉하도록 땀에 젖은 소미가 의기양양하게 이렇게 말하고는 나가버렸다. 나는 다른 일하면서 눈길 한번 주지 않았는데 저희들끼리 부산하게 왔다 갔다 하는 분위기는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그제야 비로소 집안을 둘러보곤 깜짝 놀랐다. 원래 소은이는 ‘농땡이 여사’고 소미는 맘만 먹으면 잘 치운다는 것을 알고 있긴 했지만 오늘은 확실히 달랐다. 너무너무 환하게 구석까지 깨끗하게 치웠다. 방바닥에 조각 색종이 하나 없이 흘린 물도 다 닦고, 물건은 모두 제자리에 있었다. 이불도 어찌어찌 개서 장롱에 구겨 넣기까지 했으며 쓰레기 담은 봉지까지 야무지게 묶어서 뒷베란다에 내놓았다. 책상 위도 종이꽃 담긴 작은 화분 하나 빼고는 깨끗하다.
나는 흡족했다. 기분까지 시원해졌다. 그렇다. 애들이 못하는 게 아니다. 이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다. 소미라서가 아니라 여덟 살 정도의 아이라면 할 수 있는 일이다. 시간은 걸렸겠지만 소미 혼자 하라 했어도 잘 해냈을 것이다. 소미 친구 하현이는 참하고 동생도 잘 돌보는 아이라 정리정돈도 잘 하겠다 믿었는데, 하현이의 힘이 소미에게 많이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남의 집 책이며 장난감, 자잘한 물건들을 함께 정리해주는 일이 쉽지 않았을 텐데 하현이는 함께 해냈다. 여덟 살은 대단하다. 과소평가하면 안 된다. 아이들은 하려고 하면 한다. 가르치면 한다.
그런데 이 일이 있기 몇 시간 전, 난 토요일로 잡힌 소미네 반 어머니 청소를 위해 학교에 갔다. 가기 전 몇 번을 망설이긴 했지만 가기로 결정을 했다. 반 대표엄마가 전화까지 해서 소미엄마 바쁘시다 해서 토요일로 잡았다 하는데, ‘그것도 못해요’하는 말이 안 나왔다. 뭐 출퇴근이 칼 같은 일이라서 퍽이나 바빠야지, 그 정도 시간을 낼 수 없는 처지도 아닌데 빠지는 게 아무래도 미안했다. 그러나 이런! 남편에게 소은이 맡겨둔다고 조금 늦게 갔더니 벌써 다 끝나버렸다. 마무리 정리하시는 선생님과 몇 마디만 인사를 나누고 돌아오려니 영 민망하고 멋쩍었다.
3, 4월은 오히려 아무 소리가 없었다. 소미에게 물어도 청소는 선생님이 언니, 오빠들하고 하신다고 해서 참 좋은 학교다 했다. 새 건물에 깨끗한 작은 학교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달 초 소미는 반 대표엄마의 이름으로 두 장의 인쇄물을 가지고 왔다. 하나는 알림인사 정도, 하나는 엄마들의 청소시간표. 선생님이 주시더냐 물었더니 소미는 어떻게 말할까 하는 표정으로 좀 망설였다.
“네, 선생님이 주시긴 했는데요, 처음엔 선생님이 안 줄라 그러시다가 다시 주시면서 조그맣게 ‘에이, 모르겠다’ 그러셨어요.”
알겠다. 선생님 생각은 이렇게 안 해도 되는데 엄마들이 굳이 하시겠다 하면 말리진 않겠지만, 이걸 내 손으로 줄려니 아무래도 찜찜하고 개운치 않다 뭐 그런 것 아니었을까 싶다. 대표엄마의 인사도 ‘부모님들의 의견이 전체적으로 협조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많기에’하는 걸로 보아 선생님의 생각은 아닌 걸로 보인다.
청소시간도 제대로 못 맞춘 주제에 무슨 할 말이 있을까만, 나는 엄마들이 왜 청소를 교육으로 생각하지 않는가 궁금하다. 몸을 움직여 쓸고 닦고 정리하고 치우는 일을 집에서 안했다면 학교에서부터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책상머리에 앉은 공부만 공부가 아니라는 거 다 알지 않는가. 할 줄 모르거나 힘에 부친다면 고학년들에게 배우고 도움 받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처음부터 그런 것도 아니고 선생님이 고학년 아이들 데리고 잘 하고 계시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선생님은 이제 1학년 반 아이들까지 조를 짜서 합류해서 서서히 청소를 가르쳐주고 배우게 할 계획이셨던가본데 이 바람직한 상황을 엄마들이 왜 5월에 와서 거꾸로 가게끔 하는지 난 모르겠다.
이런 불만을 가지고도 학교에 갔던 건, 소미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도 여전히 엄마들을 위해서다. 논리가 빈약하고 모순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청소를 늘 하는 엄마만 한다는 건 미안하기 때문이다. 대표엄마의 나긋나긋하고 미안해하는 목소리의 전화를 여러 차례 받고, 나도 괜히 미안해서 못 가겠다고 딱 잘라 말하지 못했다. 이건 어쨌든 가겠다는 약속과 다르지 않다. 오는 줄 알고 있는데 빠져버리면 다른 사람이 내 몫까지 하고 있을 것 아닌가(결국 이번에 그렇게 되고 말았지만). 학교에 전혀 안 가고 엄마들 모임을 무조건 백안시하며 무슨 꼿꼿한 선비인양 그러고 싶지는 않다. 일하니까 당연히 못 간다고 당당하게 그러기엔 민망하게 이제 좀 안 바쁘다.
정릉 쪽에서 평생 초등학교 평교사를 지내다 퇴임하는 분을 알고 있다. 이제 칠순을 훌쩍 넘긴 그 분과 엊그제 통화를 했다. 1학년 담임을 워낙 많이 하셔서 아직도 율동이며 노래를 잘 하시는 아이 같은 할머니시라 학교에 간 소미의 안부부터 물으셨다. 한번 보고 싶다고 하셨다. 오래 재직하고 퇴임하신 학교가 집 근처라 자주 학교교정에 내려가 보며 바람도 쐰다며 말씀하셨다.
“아니, 요즘에 왜 학교에서 엄마들에게 청소를 시키나? 재형이도 갔었어? 옛날보다 교사들의 근무환경이며 교실환경이 너무 좋던데 선생님들이 어째 더 게으른 것 같애. 그리고 애들이 청소를 배워야지. 어리면 어린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그게 교육 아닌가?”
“학교쪽에서 어머니보고 청소하러 오라는 경우는 거의 없는 걸로 알고 있어요. 학부모들이 자발적으로 그렇게 많이 하는 거죠.”
“아니, 그래도 그렇지. 단호하게 ‘안 오셔도 됩니다. 아니, 청소하시는 일로는 오지 마십시오. 아이들과 제가 알아서 합니다. 청소도 공부거든요’해야지. 선생님들이 맘속에 해줬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이 있어서 그렇게 말하지 못하는 거 아닌가 싶어 난.”
이 할머니선생님은 우선 선생님 책임이 크다고 하셨지만 어쨌든 기본 생각은 나와 같으시다. 이래서 난 이 분을 좋아한다. 선생님과 학부모 사이의 교류가 나쁘다는 게 아니다. 자모회 같은 모임을 뭐라고 하자는 게 아니다. 다만 왜 그게 ‘청소’여야 하는지 난 모르겠다. 애들이 힘들까봐? 선생님이 힘들까봐? 늘 알림장을 보면 같은 항목이 며칠 이어질 때가 있다. 소미 말로는 애들이 집에서 준비해서 내야 할 것을 제때 안 내거나 해야 할 일을 안 해서 그런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그런 것부터 빨리빨리 제때 하는 게 선생님의 잡무를 돕고 수업준비를 돕는 일이 아닐까 난 늘 그 생각이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잘한다. 특히 부모가 없는 밖에서는 어리광 없이 오히려 더 의젓하게 잘하는 경우가 많다. 청소도 가르치고 서로 돕게 하면 잘할 수 있다. 처음부터 잘 안 되더라도 꾸준히 함께 하면 결국 될 것이다. 나는 그게 교육의 효과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