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뼘 성장드라마
'각설탕', 그리고 출산에 대한 기억 본문
“나는 가만히 앉아있는 게 힘들어요.”
미사시간에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고 좀이 쑤시는 소은이에게 그게 미사 드리는 자세냐, 좀 엉덩이 붙이고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겠냐고 잔소리를 했더니 하는 대답이다. 힘든 것도 해야 할 때는 해야 한다고 했지만 에너지가 넘치는 건지, 산만한 건지 요즘 소은이에겐 하나마나한 소리다.
그래서인지 소은이는 극장가는 일에 늘 설왕설래다. 꼼짝없이 어두운 곳에서 두어 시간을 꽝꽝 울리는 큰 소리를 들어가면 영화가 끝날 때까지 자기 좌석에 앉아있어야 한다는 것이 고역인가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영화를 보러가도 조금 있다가 언제 끝나냐고 하고 크게 무서울 것도 없는데 더 무서움을 탄다. 심지어 한창 재미있을 장면을 코앞에 두고 중간에 제 아빠랑 팝콘 사러 나간다.
그런 소은이라 이번에도 쉽지 않았다. 소은이에게 <각설탕> 함께 보러가자고 소미와 연합작전을 펴 2박 3일을 꼬셨다. 난 문근영과 달리 맑고 귀여운 이면에 강단 있는 이미지를 함께 가진 임수정을 더 좋아하는데, 마침 ‘전체관람가’여서 애들 따로 두고 갈 계획 세우지 않아도 되어서 좋았기 때문에 더 공을 들였다. 소은이는 어렵사리 못 이기는 척, 되게 비싸게, 함께 가기로 했다. 그래서 일요일 오후에 2주간 훈련을 마친 남편까지 네 식구가 오랜만에 극장을 찾았다.
<각설탕>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아는 것처럼 어릴 때 엄마가 죽고 말 목장을 하는 아버지와 사는 소녀가 ‘천둥’이라는 이름을 가진 말과 함께 경마대회의 기수로 성장한다는 이야기로, 엄마를 그리워하는 소녀가 말을 통해 위로받고 교감하고 성장하는 내용이 뼈대를 이룬다. 미리 적잖이 여성들의 눈물샘을 자극한다고 듣고 갔지만 뭐 진짜 눈물이 나랴 싶었는데 생각보다 가슴을 찡하게 하는 장면이 많았다. 버티다가 손목 잡혀 간 우리 소은이가 영화 보는 내내 자주 울어서 주변 사람들의 놀라운 시선을 받을 정도였다.
그런데 사실 고백하자면 이 영화는 나의 악취미가 슬슬 발동해서 소은이를 억지로 잡아끈 면도 좀 있다. 소은이는 어릴 때부터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참 잘 울었는데(네 살 때 별로 슬픈 장면이 아닌데도 드라마를 보고 처음 울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그 모습이 너무 귀엽고 예뻐서 그거 보려고 아주 가끔 이렇게 판을 벌일 때가 있다. 그런데 이번엔 안타까운 장면, 슬픈 장면, 감동적인 장면에서 감정을 어쩌지 못하고 우는 모습이 강도가 세서 은근히 걱정되었다.
반면 소미는 드라마나 영화를 보다가 눈가가 젖는 일이 거의 없는 아이니 계속 콧물 훌쩍이는 소은이보고 좀 고만 울라고 핀잔을 했다. 내가 낳은 아이들이 이렇게 다르다. 예전엔 우는 소은이 옆에서 난 아무렇지도 않은데 너 왜 우냐고 하는 소미를 보면, 내가 저렇게 안 키웠는데 왜 저렇게 마음이 팍팍하고 메말랐나 싶어서 얄미운 마음까지 들었는데 요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눈물을 흘리며 본 사람만 마음으로 보았다고 할 수는 없는 일, 생각해보면 나도 어릴 때는 물론 다 커서 자식을 낳기 전까지도 영화 보면서 좀체 울지 않았다. 내가 그렇다고 감흥이나 감동이 없었던 것은 아닌데…. 그런데 이제 자식을 낳고 기르면서 나이 한두 살 더 먹으니 눈물샘이 여물었는지 잘 운다.
그러면서도 호기심여왕 소은이는 틈만 나면 계속 내 귀에 대고 소곤소곤 물었다. 천둥이가 각종 경주에서 승리하는 장면을 연속적으로 박진감 넘치게 보여주는 장면에서는, “저렇게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계속 경주만 해요? 진짜 불쌍하다!”하는가 하면, 달리는 말에서 떨어진 기수가 다치는 장면을 보고는 “저거 진짜 다치는 거예요? 영화가 진짜로 다치는 거 찍는 거예요?” 이러면서 아이다운 호기심을 계속 보였다. 그리고 영화를 다 보고 난 후엔, 엄마는 안 울었냐고도 물었다.
“엄마? 엄마는 찡한 장면은 많았는데 진짜 눈물까지 주루룩 난 장면은 딱 하나 있었어.”
“뭔데요? 마지막 장면? 천둥이 죽을 때?”
“아니. 그 반대. 천둥이가 태어날 때.”
나는 말은 아니지만 소가 새끼를 낳는 과정을 몇 차례 함께 한 경험이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친정에서는 큰오빠가 젖소를 길렀기 때문에 어린시절부터 외양간 냄새에는 코가 감각을 잃었고 겨울에는 막 태어난 송아지와 한방에서 잔 적도 있다. 털만 마르면 그 미끄러운 방바닥 딛고 일어나려는 녀석이 미끄러지고 넘어지는 소리에 겁이 나서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래도 태어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은 얼룩이 송아지는 엉덩이에 똥도 안 묻어있고 털도 하얀 게, 깊은 속눈썹 아래 놓인 맑은 눈망울하며 정말 참 예뻤다.
그런데 내겐 그 중에서도 가장 잊혀지지 않는 출산 장면이 하나 있다. 스물다섯 살 정도일 때인데, 그때 나는 췌장염을 좀 심각하게 앓아서 오래 병원에 입원했다가 회사도 그만 두고 집에서 요양하는 중이었다. 병원에서 퇴원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비 오는 밤중에 초산(初産)인 어미 소가 진통을 한다는 큰오빠 목소리를 들었다.
초산은 사람이나 동물이나 모두 어려운 모양이다. 집안에 조용한 긴장이 감도는 가운데, 엄마는 분만을 도와줄 동네 아저씨들을 부르러 가시고 새언니는 빨아둔 한 보퉁이의 마른걸레(대부분 면으로 된 헌 옷가지)를 꺼내오고 필요한 것들을 준비했다. 소의 새끼는 사람과 달리 다리부터 나오는데, 초산이나 노산(老産)인 소들이 힘들어하면서 힘을 못 주고 새끼의 목숨이 위태롭게 될 때는, 조금 나온 발을 잡아 발목에 밧줄을 묶어 힘 좋은 장정이 잡아끌어서라도 빼내야 한다. 나는 큰오빠가 발도 보이지 않는 새끼의 발목을 찾아 어미 소의 질 속에 손을 푹 집어넣어 간신히 밧줄을 맬 수 있을 만큼 질 밖으로 끄집어내는 걸 본 적도 있다.
그런데 생각보다 상황이 여러 모로 안 좋았다. 엄마는 어찌된 일인지 도움을 줄 만한 남자 어른을 한 사람도 데려오지 못하셨고(우리 동네는 10가구 안팎인 작은 동네였다) 초긴장 상태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는 어미 소의 첫 출산을 온전히 식구끼리 감당해야했다. 그리고 결국 퇴원한 지 얼마 안 되는 반 환자인 내 힘이라도 보태야 하는 아주 긴박한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새끼 발목만 보이는데다 밧줄을 잡아매고 큰오빠, 새언니, 엄마, 나 이렇게 넷이 밧줄을 잡아당기는데 그렇게 여러 사람이 매달리는데도 쉽지 않았다.
그날 나는 태어나서 그렇게 절박한 심정으로 온힘을 다한 적이 그때 말고 또 기억나지 않는다. 나 스스로 산모가 되어 소미와 소은이를 낳을 때도 그렇게 절박하지 않았다. 어미 소의 괴로운 울음소리가 잠시도 맥을 놓을 수 없게 나를 아프게 채찍질하고 죽어나오는 송아지 보는 일이 너무 무서워, 힘없는 다리가 버들버들 떨리고 눈앞이 노래질 정도로 온힘을 다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미끄덩’하는 느낌이 밧줄에 전해지며 새끼가 쑤욱 나왔다.
나는 비칠거리는 몸을 겨우 중심 잡고 ‘살았구나’하는데 큰오빠는 말 한마디 없이 고개를 흔들었다. 송아지 입에 있는 것을 빼내고 얼굴을 닦아주고 가슴을 중심으로 몸통을 마사지 했으나 송아지는 축 늘어져서 움직이지 않았다. 약간 눈을 뜨는 것 같았으나 그 큰 눈을 불안정하게 잠시 희번덕거릴 뿐이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자 갑자기 속이 울렁거리고 팔다리가 벌벌 떨려와, 우사(牛舍) 밖으로 간신히 뛰어나와서 저녁에 먹은 걸 다 토했다. 그리고는 한참 일어나지 못하고 주저앉아 혼자 소리죽여 울었다. 송아지는 식구들의 간절한 바람를 버리고 결국 죽었다.
영화속에서 망아지가 태어나는 날도 비 오는 날이었다. 천둥까지 치고. 노산인 어미는 괴로운 신음을 하고 힘을 주지 못했다. 수의사가 고개를 젓는 사이 소녀의 아버지가 있는 힘을 다해 새끼의 발목을 잡아당겼다. 소녀는 돌아가신 엄마가 아꼈던 어미 말이 괴로운 신음을 토해내는 걸 보다 못해 아버지에게 그만 하라고 악을 쓰며 울었다. 결국 새끼는 나왔지만 우리 집과 반대로 어미가 죽고 새끼는 살았다.
나는 이 망아지 출산장면에서 울었다. 우리 집이 목장을 하면서 내가 소들에게 신경 쓴 건 없지만 새끼 출산이 집안의 기쁨이 되는 과정보다 슬픔과 아픔, 허탈함이 되는 과정을 극심한 체력소진과 함께 경험하다보니 그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는 스크린을 무심히 볼 수 없었다. 한참 잊고 살았던 예전 기억이 생생하게 살아나면서 그 급박하고 절박한 상황에 머리가 다 띵할 정도였다 (알고 보니 실제 출산을 앞둔 말을 섭외하여 열흘간의 긴 기다림끝에 촬영한 장면이라 한다).
생명이 태어나는 과정은 새끼가 온전히 건강하게 태어나서 그 또랑또랑한 눈으로 세상의 밝은 빛을 정면으로 받으며 신고식을 하기 전까지 그렇게 고통의 무늬만 그려댄다. 나는 소미를 낳을 때 10시간 동안 진통을 하는데도 산도(産道)가 쉽게 열리지 않아 애를 먹었다. 한창 아기의 힘찬 심장박동을 들려주던 기계의 규칙적인 소리가 어느새 불규칙하고 미미하게 들릴 때면 나는 어김없이 잠시 진통이 잦아든 사이로 수마 같은 잠에 정신을 빼앗겨가는 중이었다. ‘양재형님~ 잠들면 안 돼요! 아기가 위험해요! 깊은 호흡 하세요!’하는 간호사의 추상같은 소리를 들으면서도 그 진통 없는 달콤한 시간에 오는 잠을 쫓지 못해 간호사에게 뺨을 맞은 적도 있다. 요즘 말로 비인권적인 출산문화 운운한다 해도 그 시간의 나는 이미 사람이거나 여자이기 전에 아기의 목숨을 손에 쥔, 그래서 정신을 놓아서는 안 되는 '어미'일 뿐이었다.
출산이 종종 숭고하고 위대한 일로 칭송되는 건, 태어나서 자기 자신을 가장 사랑하며 자라온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아닌 다른 생명을 세상에 내놓기 위해 극심한 고통의 다리를 피하지 않고 기꺼이 건너는데 있다고 본다. 부모와 형제, 연인을 사랑하는 일도 결국은 자기를 사랑하는 또 다른 방법이라는 글을 어디선가 읽었는데, 많이 동감한다. '나' 아닌 다른 사람을 모두 '타인'이라고 했을 때, 조건없이 이타적인 삶을 사는 첫걸음이 사실상 출산과 함께 시작되는 것 아닐까. 그리고 자식을 낳고 기르는 과정이 평생 기다림과 인내의 연속임을 감안할 때 때때로 종교적인 수행으로도 좀체 얻을 수 없는 깨달음까지도 얻는다. (라일락님 말씀대로라면 자식이 고3 지나 재수까지 겪은 그 엄마는 절에 갈 필요가 없다고 하지 않는가. 이미 다 깨달아서.)
나는 소은이에게 송아지 낳던 때 이야기를 간단하게 해주고 그때 생각이 나서 가슴이 찡하고 아파서 눈물이 났다고 얘기해주었더니 엄마의 놀라운 경험에 입을 다물지 못하겠다는 표정이다. 소은이는 끝으로 말의 간식이자 소녀와 말을 이어주는 매개체인 ‘각설탕’을 자기도 말처럼 우적우적 먹어보고 싶다는 말로 감상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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