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뼘 성장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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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의 말,말,말!

칸쵸는 무서워?

M.미카엘라 2004. 11. 2. 11:55
 

 “언니, 저 아기엄마 된대요!”

 토요일 오후에 2층에 사는 이대위(여군이다)가 집으로 찾아와 내 팔을 붙잡고 좋아라 하며 임신소식을 전해왔다.

 

 7년 전 백일이 막 지난 소미와 설악산 자락이 보이는 원통에서 살 때, 남편의 부대로 업무차 다른 부대에서 여군이 온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녀의 숙소가 마땅치 않아 우리 집에서 하룻밤 재워준 적이 있었는데 그녀를 여기서 다시 만났다. 양양이 고향인 이대위는 오징어를 한 축 들고 찾아와 스스럼없이 언니! 하면서 자기를 모르겠느냐고 하는데 난 엉거주춤 금방 못 알아보았다. 원통에서 살 때 너무 잘 대접해주시고 재워주신 여군소위요, 하는데 그제야 아하! 했다. 공군장교와 결혼했다는 그녀는 여전히 씩씩했고 전투복이 폼나게 어울렸고 그 좋은 성격도 한결같았다.

 

 “어머! 정말요? 축하해요. 정말 잘됐다. 기다렸잖아요.”

네, 하며 수줍게 웃는 품이 평소 그녀의 모습과 조금 달랐지만 참 이뻤다.

 “소미야. ○○이모 아기 가졌대. 정말 기쁜 일이지? 이모 축하해드리자!”

 

 그녀는 소미와 소은이를 너무 예뻐한다. 군인의 아내가 아니라 군인이다보니 업무에 바빠 바로 아래층에 살아도 자주 오진 않지만 한번 올 때마다 소미, 소은이하고 아주 잘 놀아준다. 아바타 놀이, 같이 만화영화 보며 낄낄 이야기하기, 온몸으로 놀아주기 등. 총각냄새 푹푹 나는 덩치 크고 우렁우렁한 수많은 젊은 병사들을 통솔하는 씩씩하고 강인한 지휘관의 모습은 그 순간 찾아볼 수 없었다.

 

 “점심 안 먹었죠? 소미아빠 용인 다녀온다고 좀 전에 전화 왔는데 잘 됐다. 날이 너무 푹하고 훗훗해서 냉면 해먹으려구 했는데 그거 같이 먹고 가요.”

 네 여자가 밥상 한 면씩을 차지하고 앉았다.  

 “앞으로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나한테 말해봐요. 내가 할 수 있는 거면 해줄게.”

 

 그녀는 남편과 근무지가 달라 주말 부부다. 입덧이라도 혹시 심해져서 입맛도 까다로워졌는데 남편이 옆에 없으면 얼마나 처량할까 싶은 생각에, 솜씨도 없는 내 주제를 잠시 잊고 진심으로 말을 건넸다.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토요일 오후 가을햇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거실에서 차가운 냉면을 후루룩 맛있게 먹었다.

 

 그런데 아무 소리 없이 냉면만 먹던 소미가 ‘엄마, 재밌는 얘기 하나 해드릴까요?’라든가, ‘엄마, 제가 학교에서 들은 이야긴데요’하는 들을 준비를 위한 워밍업이 되는 말 한마디도 없이 바로 이런 이야기를 시작했다.


 엄마, 새우깡하고 빼빼로하고 칸쵸가 살았는데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빼빼로가 날마다 칸쵸의 가방을 들어주는 거예요. 그래서 옆에서 이걸 보고 있던 새우깡이 하도 이상해서 어느 날은 빼빼로에게 이렇게 물어봤대요. “빼빼로야, 너는 몸도 말라서 약한데 왜 맨날 칸쵸의 가방을 들어주는 거니?” 그랬더니 빼빼로가 겁먹은 표정으로 그랬대요. “너 몰라서 그래. 저기 칸쵸의 문신이 안 보이니?”


 이대위와 나는 밥상 앞에서 말 그대로 완전히 뒤집어졌다. 갑작스레 들을 준비(?) 없이 시작된 이야기에 어리둥절하면서도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는 너무 웃겨서 참을 수가 없었다. 정말 입안에 냉면국물이라도 머금고 있었으면 앞사람한테 뿜어댔을지도 몰랐다. 나는 가까스로 정신을 가다듬고 말했다.

 “하하, 소미야. 이제까지 소미가 엄마한테 들려준 재미있는 얘기 중에서 제일 재미있다. 정말 재미있어. 이따가 아빠 오시면 이 얘기 해 드려봐. 아빠도 아마 무지 재밌어 하실 걸.”

 

그런데 이대위와 나를 또 한 번 웃긴 일은 그 다음이었다. 얼굴에 아무런 표정도 없던 소미가 “근데 엄마, 이거 웃긴 얘기예요?” 그러는 거다. 순간 이대위와 나는 또 한바탕 웃어댔다.

 “소미야, 그럼 너 이 얘기 왜 웃긴지 모르는 거야? 그러면서 얘기한 거야?”

 “네, 이거 진아 언니가 웃긴 얘기 해주겠다고 하면서 해준 건데 전 하나도 안 웃겼어요. 이거 웃긴 얘기예요? 엄만 그렇게 웃기세요? 문신이 어쨌다구요?”

 

 이대위는 소미가 귀여워 어쩔 줄 모르겠다고 난리였다. 제 딴엔 궁금해서 물어보자고 생각하며 시작한 말일 텐데, 어른들인 우리는 인터넷에서 엽기, 코믹 사이트를 뒤지지 않는 이상 이제는 어디서 들을 기회가 별로 없는 이야기였던 터라, 쉽사리 웃음을 거둘 수가 없었다. 나는 별로 설명하기에 좋은 내용은 아니었지만 소미의 궁금증을 풀어주지 않을 수 없어서, 문신과 힘만 세고 불량한 사람들(일명 '조폭')의 상관관계(?)를 간단하고 알아듣기 쉽게 설명했다.

 

 “아하, 칸쵸에 그려있는 그림? 그거요? 그래서 빼빼로는 칸쵸가 무서워서 가방 들어준 거구나! 아, 이제야 알겠다.”

 궁금한 것을 알아낸 시원함, 비로소 웃을 수 있는 이유를 찾아낸 즐거움이 교차하는 소미 얼굴은 환하게 빛났다. 나는 비교적 똘똘하고 야무지다는 소리를 많이 들어온 소미에게서 저런 표정을 볼 수 있다는 게 즐겁고 참 사랑스러웠다.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은 때다. 소미 덕분에 가을 오후의 충만함이 그 햇살과 함께 우리들의 웃음소리로 더욱 꽉 찬 느낌이었다.

 

 그런데 평소 그녀답지 않게 끝까지 조용했던 우리 집 2번 소은양. 그녀는 그때까지도 이해하지 못한 듯 눈만 껌벅껌벅한 채 냉면국물 속에 젓가락만 걸치고 있었다.

 

세 친구, 빼빼로의 말

 

 

칸쵸, 진실을알려주마

 

 

 

 

 

 

 

 

 

 

 

 

 

 

 

 

 

 

 

 

 

 

 

 

칸쵸친구들, 와글와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