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뼘 성장드라마
수원 화성을 가다 본문
“엄마, 꼭 녹화해주세요오~”
소미소은이가 월, 화요일이면 잠들기 전에 하는 말이다. 요즘 우리 집 네 식구는 사극 <이산>에 푹 빠졌다. 남편과 나는 본방송을 사수하지만 애들이 드라마를 본방송으로 보고 자자면 너무 잠드는 시간이 늦어져 내가 녹화를 해놓고 낮이나 주말에 한꺼번에 보게 해준다. 소은이가 주말의 재방송을 한번 보고 나더니 재방송은 안 되겠단다. 본방송과 재방송을 다 본 어떤 회에서 편집을 해서 잘라내는 장면이 많다는 점을 눈치 챈 것이다.
처음엔 24회밖에 안한다는 <태왕사신기>를 보게 해주려고 했지만 일단 그 드라마는 내가 흥미를 잃었다. 그래서 모두 60여회가 된다는 <이산>을 보게 해주려는 결심은 이 드라마를 만든 연출자의 전작 <대장금>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들과 함께 봐도 좋은 사극을 만든다는 믿음이 있었던 듯 싶다.
나는 아이들에게 역사물에 관한 한 드라마나 만화 모두에 대체로 너그럽다. 역사가 어른들에게도 쉬운 것은 아니고, 비록 허구를 가미했다고 해도 역사를 가깝게 느끼고 쉽게 이해하는 데는 드라마나 만화 만큼 수월한 것도 없이 때문이다.
“엄마, 우리 수원화성 가요.”
<이산>을 한참 보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이런 소리를 안 하던 소미가 <수원화성과 정약용>이란 책을 다 읽고 나더니 <이산>에서 정약용은 언제 나오냐, 수원화성 지을 때까지 드라마가 이어지느냐 하면서 궁금증이 많아지더니, 수원화성을 빨리 가보고 싶다고 했다. 그랬다가 가깝게 잡은 날이 갑자기 바싹 추웠던 지난 토요일이다. 햇볕은 있었지만 바람도 엄청 불고 그 끝이 매서워 옷을 잘 챙겨 입었다고 생각했는데도 그래도 추웠다.
많이 알려진 대로 수원화성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올라있다. 본래 군사건축물로만 평가를 시작했다가 화성을 쌓은 과학기술과 자연과 어우러지는 건축기법, 백성을 사랑하는 정조의 마음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위원회 실사단의 마음의 움직였다는 후문이 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일본의 히메지 성이나 프랑스의 샹보르 성, 영국의 헤이드리안 성, 덴마크의 크렌보르그 성도 모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성이지만 이 성들이 모두 왕이나 영주의 저택으로 생활주거지 성향이 강한 반면, 화성은 왕을 위한 행궁과 관아, 그리고 백성들의 집과 시장이 함께 어우러진 도시의 기능을 완벽하게 가진 성으로 세계 유일무이하다고 한다.
‘수원화성’ 어린이 길잡이 책을 화성 가는 길에 차 안에서 읽었는데, 정조대왕이 백성에 대한 사랑을 어떻게 실천했는지 화성축조 한 가지만으로도 너무나 잘 알 수 있었다. 국가적 토목공사를 하면서 많은 세금을 거둬들여 민심을 잃는 대신, 왕실의 재산으로 비용을 충당하면서 공사에 참여한 백성들에게 제값의 임금까지 치렀다는 점에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요즘 말로 하면 일자리 창출의 성공적인 사례로 세계 역사에도 거의 없는 일이라 하니 정말 역사를 새로 쓴 임금이 아닐 수 없다.
나와 남편, 소미와 소은이는 화성 전체의 둘레가 5.74 킬로미터인데, 쌀쌀한 날씨를 고려하여 창령문에서 장안문으로 가는 길 4분의 1 정도만 걷기로 했다. 소미는 나라가 위험에 처했을 때 횃불을 올리는 ‘봉돈’이 있는 곳을 가고 싶어했으나 주요 건축물이 있는 곳과 떨어져 있어서 다음에 한번 더 와서 마저 걸어보자고 약속했다.
화성은 차를 타고 밖에서 보는 것도 멋지지만, 오르락내리락 성곽을 직접 걷는 즐거움이 아주 크다는 것을 알았다. 성 안팎으로 현대식 건물이 즐비하게 보이지만 그마저도 넉넉하게 감싸 안을 수 있는 기품이 있고 걷는 사람의 마음에도 여유가 넘친다. 따뜻한 음료를 하나씩 사들고 천천히 걸으며 우리는 드라마 <이산>과 정조대왕, 그리고 화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소은이는 "엄마, 하늘나라에서 정조대왕이 참 기뻐하시겠다. 이렇게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도 우리들이 즐겁게 화성을 찾아보고 임금님 이야기를 하니까" 한다. 남편은 군사요새로서 기능에도 완벽했던 화성이 신기한 모양이다.
정조대왕이 화성행차를 하여 머물렀던 행궁과 화령전을 돌아보면서 군복을 입은 정조의 초상을 뒤로 하고 활쏘기 자세를 취했던 소은이 사진이 제일 예쁘다. 해가 완전하게 지고 일제히 화성을 향해 아름다운 조명이 쏟아진 시간의 감동을 잊지 못하겠다. 내가 아직 야경을 잘 찍지 못해 그 아름다운 광경을 제대로 담지 못해서 아쉽지만 다음에 한번 더 와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으니 괜찮다. 한 9월 말쯤 올 걸 싶다. 해가 짧으니 아쉽다. 화성은 점심 먹고 구경을 시작해서 해진 후까지가 가장 좋은 시간이란 생각이고, 가벼운 간식을 가지고 와서 걷다가 힘들면 쉬어가는 것도 좋겠다 싶다.
수원에 소갈비가 유명한 것도 정조 덕분이라는데, 남편은 좀 비싸도 유적답사 이후인데 한번쯤은 먹어봐야하지 않겠냐고 했다. 어렵사리 유명하다는 수원시내의 모 갈비집을 찾아갔는데 손님이 너무나 많다. 그런데 찾아간 집은 정직했지만 서운하게도 ‘호주산’ 고기라고 표기해 놓았다. 남편은 가격을 보고 당연히 외국산 고기일 거라 생각했다고 한다. 이 가격도 비싸지만 한우는 이 가격보다 훨씬 비싸고 실제 물량을 대는데 어려움이 있을 거라 했다. 나는 무슨 근거로 수원갈비는 ‘한우’일 거라는 굳건한 믿음을 가졌을까. 그래서인지 아무리 한우는 이보다 훨씬 비싸다지만, 이 가격에 호주산을 먹어줘야 하나 싶은 게 그렇게 서운할 수 없었다.
남편은 이왕 온 거 감질나지 않게 먹자며 덜컥 3인분을 시켰는데 좀 많았다. 남기고 가는 게 너무 아까워 한 점씩이라도 다 나눠서 겨우 다 먹었다. 소미소은이는 맛있다고 잘 먹었고, 나도 맛있게 먹고 배부르니 서운함이 좀 가셨다. 참 인간, 간사하다.^^ 추운데서 많이 떨었던 터라 솜손은 돌아오는 따뜻한 차안에서 골아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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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화성 걷기 행사>
2007년 11월 3일 토요일 9시.
5.78킬로 화성을 완주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추첨하여 경품도 준단다. 푸짐하다.
아이들은 학교에 가는 토요일인데,
소미소은이는 현장학습 신청하고 또 가자고 한다.
가이드를 따라서 쫀쫀하게 화성 돌아보실 분들에게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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