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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학교

동숭동 나들이

M.미카엘라 2008. 3. 1. 18:32

 

 

<내가 좋아하는 장소에게> 아이들 책이지만 아이들이 그다지 재미있게 읽을 책은 아니었다. ‘건축가 김수근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이 그림책은 ‘건축’이라는 분야를 우리나라 건축사의 거목이라고 할 수 있는 김수근 선생의 생각과 작품을 통해 이야기해주고 있지만, 차라리 나처럼 건축 문외한의 어른이 읽기에 더 좋은 그림책이라는 생각이다. 

 

 

 

그런데 지난주에 동화발레 <인어공주>를 석 장 예매해두었다. 원작이 유명하고 이미 초연을 본 사람들의 리뷰가 좋아서 구미가 당기는데 28일, 29일, 1일 사흘 공연 중 이틀은 전석 이미 매진이고 가운데 날도 12장만 남아있는 걸 보고 서둘렀다. 그런데 공연장소가 ‘아르코예술극장’이다. 아르코예술극장? 거기가 어디지? 동숭동이라는데 이름이 생소하다. 거긴 소극장들이 무수히 많으니 새로 생길 수도 있고 다른 이름으로 바뀔 수도 있겠지만, 발레공연이라면 대극장 규모여야 할 것 같은데 새로 큰 공연장이 생긴 건가? 하긴 내가 동숭동 안 가본 지가 언제인지 모르겠다.

 

알고 보니 아르코예술극장은 내가 학교 다닐 때는 ‘문예회관대극장’이라고 불렀던 곳이다. 이 아르코예술극장, 아르코미술관, 샘터파랑새극장이 있는 샘터사옥이 모두 김수근 선생의 작품이라는 사실을 <내가 좋아하는 장소에게>를 통해 최근 알았다. 학창시절 그렇게 싸돌아다니던 거리, 세 건물이 가까이 옹기종기 붙어있는데 인상이 비슷한 그 건물들을 기억해내고는 이제야 아하~하고 무릎을 치게 된다.

 

“솜손, 우리 동화발레 보러가는 공연장이 아르코예술극장이거든. 근데 그거 김수근 선생님 작품이당~”

“우와~ 정말이예요? 우리가 그런 유명한 건물에 들어가게 되다니…”

그제야 아이들이 책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꼼꼼히 다 읽어가진 않았지만, 호기심을 끄는 제목에서 멈추고 재미있는 그림에서 눈길을 오래 주었다.

 

나 역시 김수근의 건축물들을 다시 보게 되었다. ‘문예회관대극장’일 때도 여기서 공연을 가끔 보았지만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확실히 아르코예술극장은 큰 극장인데도 국립극장이나 세종문화회관 같이 사람을 압도하는 느낌이 없다. 사람을 주눅 들게 하지도 않는다. 좌석 수 같은 수치적 규모가 다르기도 하겠지만, ‘사람들이 편안하게 느낄 수 있는 적절한 크기’를 중요하게 생각한 김수근의 건축철학이 잘 반영된 공연장이란 생각이다. 콘크리트나 대리석의 차가운 느낌 대신 속속들이 붉은 벽돌을 쓴 점은 새삼스럽게 따뜻하고 정겹게 느껴진다.

 

 

 

 

 

 

 

 

 

“벽돌을 너무 좋아하셨다고 하더니 정말 건물전체, 안팎에 모두 벽돌이네. 나 이런 건물 첨 봐.”(소은)

“벽돌을 반으로 잘라 쓰기도 하셨다니 여기 툭 튀어나온 벽돌들이 그런 것 같애.”(소미)

“이 벽돌 몇 개인지 다 세다간 죽겠지?” (소은)

“건축도면에 ‘담쟁이 넝쿨 심기’라고 표시하셨다고 하는데 그럼 이 담쟁이 넝쿨 봄 되면 새싹 나요?” (소미)

 

나는 비오는 여름날, 비에 젖어 흔들리는 샘터파랑새극장의 담쟁이넝쿨이 얼마나 예쁜지 설명해주었다. 2층 찻집에서 마시는 차 맛이 얼마나 좋은지도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학림’과 ‘오감도’가 아주 오래된 곳이라는 점, 그러나 간판은 옛날 것이 훨씬 운치 있었다고도 이야기해주었다.

 

 

 

                

                          

 

 

 

 

 

 발레공연도 아주 좋았다. 1시간 20분 정도의 약간 짧다 싶은 공연시간, 지루할 틈 없이 꽉 짜인 구성, 탁월한 상상력이 잘 드러난 바다 속의 정경, 화려하고 재미있는 의상과 그에 어울리는 안무, 마술을 접목시켜 관객을 흥분시킨 연출, 젊고 아름다운 발레리나들의 환상적인 춤, 그럼에도 아주 좋은 좌석도 5만원이 넘지 않는 합리적인 가격, 나는 두루두루 만족스러웠다. 창작발레 1호라고 할 수 있다는데 유명한 원작의 힘을 등에 업고 문화수출품이 되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미 소은이도 두 해 전에 보았던 국립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보다 지루한 부분 한 군데도 없이 훨씬 재미있었다고 후한 평가를 했다. 로비에서 아이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던 ‘김선희발레단’의 김선희 씨에게 아이들의 이런 말을 전해줄 걸, 그것을 하지 못한 것만 아쉬움으로 남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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