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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학교

우중행복(雨中幸福) - 봉하마을에서

M.미카엘라 2008. 5. 26. 01:33

(*미리 알려드립니다. 자세한 글과 많은 사진으로 평소보다 더 스크롤 압박이 클 것으로 예상되어 송구스럽습니다. 내용을 보시면 이해해주시리라 생각합니다. ^^)

 

 

일이 그렇게 완전한 행복으로 다가오리라 나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겸손한 소망이 금방 벅찬 감격과 행복으로 수놓았던 시간.

그 대단원의 서막은 언니가 열었다. 언니가 친 사고 중에 단연코 으뜸이다.

 

최근에 쓴 소은이 일기를 본 이후 너무도 심란한 마음에 언니에게 상의했던 금요일. 정말 소은이 일기대로라면 난 좀 억울하다. 내가 아직 초등학생인 두 아이를 공부로 닦달하지 않는다는 건 주변에서 나를 아는 분은 다 아는 사실이다. 공교육과 책, 여행, 다양한 체험 정도에 의지하며, 요즘 현실을 외면하는 ‘이상적인 소리만 하는 엄마’라는 소리도 듣는 마당에, 3학년짜리 우리 작은 딸 소은이의 일기만 보자면 나는 수학공부로 애를 잡는 엄마처럼 느껴진다. 날마다 다른 아이들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양을 공부하는데도 소은이에게 이토록 큰 스트레스가 되었다니 참 당황스러웠다.

 

언니는 우리가족과 토요일로 계획한 <봉하마을과 남해여행>에 대해 상의하다가, 당장 소은이의 일기를 사진 찍어서 보내라 했다. 지난 2월 노무현대통령 퇴임하던 날 쓴 일기까지 함께. 언니는 그것들을 모아 노무현 대통령 홈페이지 ‘사람 사는 세상’에 사연과 함께 올렸다. 이렇게....

 

 

제목: 미칠 것 같은 10살 조카… 살려주세요.

소은이는 10살입니다.

어미 맘 아프게 하는 이런 일기에 맘 아픈 노무현홀릭 동생이 봉하마을 여행을 계획했습니다. 대한민국의 평범한 엄마 축에 끼지 못하는 저희 자매는 공교육 이외에는 여행과 책으로만 아이들을 키우는, 무지랭이 소리 듣는 어미들입니다. 그런데도 이리 괴롭다하니 봉하마을 들렸다 남해도를 가기로 했습니다.

그런데..소은이가 남해도는 싫고 봉하마을만 가잡니다.

어른들이 여행욕심에 대통령 얼굴도 못 뵙고 남해도로 쌩~ 가버릴까봐 그런대요.

그러니까 소은이는 하루 종일 봉하마을에서 죽치자는^^ 겁니다.

저희는 내일 24일 새벽 4시에 의정부를 출발해 봉하마을에 8시 30분쯤 도착하려 합니다.

몇 시에 산책을 나오시려는지요. 그 시간에 맞춰주심 아니되시는지요.

힘들어 속으로 엄마 욕도 하는 소은이 힘나라고 기념사진 한 컷 해주시면 안되는지요.

 

 

 

 

 

 

 

언니는 그 다음에 이런 짤막한 글과 사진 한 장을 또 남겼다.

 

 

제목: 미칠 것 같은 소은이입니다.

혹여 산책 나오셨다가 쉬이 알아보시라고 사진 올립니다.

 

 

 

노대통령을 좋아하는 나를 배려해서인지(늘 그쪽 소식에 목 빼고 사니까), 나로 인해 서서히 다들 물이 든 것인지, 모두 순순히 봉하마을 여정을 암묵적으로 허락한 가운데 떠난 길이다. 새벽 4시에 출발했다. 숙박을 하면 비용이 많이 드니 온전히 이틀을 잘 쓰지 못할 여행이 아니면 우린 새벽에 출발해서 밤에 돌아오는 이런 여행을 종종 하는데, 아이들은 겨우 옷만 갈아입고 소은이 표현대로 그야말로 ‘질질 끌려나왔다.’ 그래도 새로 산 차를 타고 하는 첫여행이다. 다들 설랬다. ㅎㅎ

 

8시가 넘어 경상남도로 들어서니 빗발이 세찼다. 우리는 홈페이지에 언니가 올린대로 정확히 8시 30분을 조금 넘겨 도착했다. 비가 쉽게 그치지 않겠구나 싶었지만 ‘오후 비올 확률 20%’라는 기상청의 확률을 기대하며 도착한 봉하마을은 생각보다 참 작았다. 작은 지방도를 두고 산 아래 자리 잡은 마을은, 사진이 때로는 얼마나 실제 모습을 본의 아니게 왜곡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대통령의 사저도 규모는 꽤 아담하고 디자인도 살짝 납작한 모습이어서 주변경관을 해치지 않는다.

 

바로 앞에 있는 대통령 생가는 들여다보기가 민망하게 사실 방치된 모습이다. 얼마 전까지는 사람이 살았다고 들었는데 아무래도 방문객이 많아지니 살기가 불편하여 이사를 한 게 아닌가 짐작한다. 최신 내비게이션에도 표시되어 있고, 김해를 들어서자마자 갈색표지판으로 친절하게 계속 대통령생가가 안내되는데 이런 모습이라는 사실이 참 놀랍다. 마을 어른들에게 인사하는 자리에서, 왕정시대라면 고향을 위해 크게 한번 밀어주었을 텐데 민주주의시대라 그러지 못했노라고 했던 노대통령의 말이 생각났다.

 

우리는 이곳저곳을 둘러보면서(별로 둘러볼 데가 없다 사실) 한 시간을 넘게 머물면서 싸가지고 간 소풍 바구니를 생가 마당 감나무 아래 펴놓고 우산을 받쳐가며 잼 바른 빵, 과일, 커피, 우유를 먹으며 즐겁게 기다렸다. 소은이를 노대통령 홈페이지에서 봤다는 대구에서 홀로 오신 어떤 분에게 커피를 나누어 드리는데, 그것도 참 신기하고 즐거웠다. 그러면서도 나는 기대하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한가한 분도 아닌데 못 보고 갈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마음을 비워야 덜 섭섭하겠다 싶어 일부러 마인드콘트롤을 했다고 해야 하나.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끊임없이 오고갔다. 그런데 오전 10시가 채 되지 않았을 때였다. 사저에서 어떤 분이 나오셔서(나중에 알고 보니 이호철 수석이었다) 누가 소은이냐고 물었다. 대통령이 지금 회의 중이시니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했다. 우리는 서로 기쁨 가득한 눈을 바라보며 환호했다. 이렇게 쉽게 뵐 수 있을 줄이야.

 

한 15분쯤 지났을까. 대통령이 곧 나오시니 소은이네 가족만 이리로 들어오라며 전경이 지키고 서있는 앞에 드리워진 통제선(‘질서’라고 써있던 줄)을 가리켰다. 소미, 소은이는 그 안에서 만들어가지고 온 프랭카드와 깃발을 들고 대통령을 기다렸다.

 

드디어 만면에 가득 사람 좋은 웃음을 띤 대통령이 나오셨다. 우리에게 바로 다가오셔서 하신 첫마디.

“누가 소은이냐? 소미는 누구고?”

그리고 회의가 있어서 좀 늦게 봤다며, 누가 언니고 누가 동생이냐, 소은이 네 일기는 잘 봤다, 먼데서 오느라 수고 많았다, 그래도 산수공부(^^) 열심히 하거라, 하신다. 대통령이 우리 어른들을 둘러보며 궁금한 얼굴을 하길래, 남편과 언니, 그리고 내가 차례로 한 사람씩 자기소개를 하니까 악수를 청한다. 소미의 볼을 살짝 만지며 내게 “아이들이 둘 다 참 예쁘요”하신다. 남편은 대통령님 때문에 아내를 잃은 기분이 들 때가 있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자상한 얼굴로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악수를 하고 볼을 만져주실 때 나는 다시 깨달았다. 내가 왜 이 분을 그토록 지지했던가, 정치적인 성향을 떠나 내가 왜 이토록 이 양반에게 많이 감동했나, 다시금 그 이유가 선명해지는 순간이었다. 참, 어린아이 일기 하나만 보고도 나올 수 있는 그런 분이지... 아, 소은이 한 명만 보고도 나올 생각을 하셨구나... 깨달음과 놀라움이 교차하면서 가슴 한쪽이 내내 뻐근했다. 대통령과 정치인을 지낸 분이지만 권위를 세우지 않고 작은 한 어린이에게 성의를 다할 수 있는 사람, 이런 사람이 대통령이었다.

 

우리와 사진을 찍고 났는데 한 비서관이 줄 밖에서 너무나 부러운 얼굴로 보던 사람들에게 크게 소리쳤다.

“오늘 소은이네 가족 덕분에 모두 가족단위로 저희가 사진을 찍어드리겠습니다. 비도 오고 오신 분도 많지 않으니.”

그렇게 해서 거기 오신 모든 분들이 사진을 찍었다. 우리는 곁에서 대통령이 계속 사진을 다 찍도록 기다리는데 카메라를 든 비서관은 계속 우리쪽으로 셔터를 눌렀다. 대통령은 들어가기 전에 인사를 하는 소미와 소은이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며 “커서 또 오너라”하신다.

 

아, 우리가 얼마나 행복했을지 글로 표현하는 일이 새삼 부질없다. 몇 번을 다녀가고도 멀찍이서도 못 만난 사람들도 많다는데, 이렇게 가까이서 특별대우를 받는 일은 꿈도 꾸지 않았던 일. 얼마 전 노대통령을 너무 좋아하는 친구가 격의 없이 대해주는 노대통령 꿈을 행복하게 꾸었다던데, 그 소리를 들은 내가 대신 횡재한 것 아닌가 싶다.

 

나는 언니에게 살아오면서 이제까지 내게 해준 일 중에서 이번 일이 최고로 고맙다고 치하했다. 예전에 해남 여행할 때 서해안고속도로가 시작되는 행담도휴게소에서 내가 비로소 가래떡을 굽고 있던 가스렌지 그릴의 불을 끄지 않은 게 생각나 눈앞에 캄캄했을 때, 언니가 ‘먼저 본 사람이 잠궈주자’하며 밸브를 잠갔다고 해서 십년감수했던 일을 최고 고마운 일로 쳤는데, 이번에 순위가 바뀌었다(언니말론 그때 일이 이미 유효기간이 지난 거라 하지만...ㅎㅎ). 언니는 귀여운 조카 덕분이라고 소은이에게 공을 돌렸지만 앞으로 이만큼 고마운 일이 또 일어날까 싶다.

 

우린 사저를 떠나 마을 앞 농기구보관소를 정리해 꾸몄다는 노사모 자원봉사센터를 둘러보며 노대통령과 노사모에 관한 자료를 구경했다. 그리고 길을 건너 마을 부녀회에서 운영하는 식당에서 대통령이 드셨다는 쇠고기국밥을 먹었다. 소미는 이제껏 먹은 국밥 중 제일 맛있다고 하는데, 다들 배가 좀 덜 고프다 해서 세 그릇만 시켰더니 못내 섭섭한 눈치다.

 

우리는 날씨야 아무래도 용서하겠다고 했다. 비는 좀체 그칠 기색 없이 계속 굵은 줄기로 쏟아졌지만, 우리는 파란 하늘에 뭉게구름이 뜬 것처럼 마음이 둥실둥실, 좀체 흥분이 가라앉히지 못하고 봉하마을을 뒤로 한 채 남해를 향해 떠났다.

 

 

* 한 가지 더 놀라운 일은 집에 채 돌아오기도 전에 시작된다. 노무현 대통령 홈페이지에 우리 가족 사진이 <소미와 소은이 가족>이란 단독 제목으로 무려 50장의 사진과 함께 올라왔던 일이다. 아는 사람이 핸드폰으로 그걸 캡쳐해서 언니 핸드폰으로 보내준 걸 우리는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받아봤다. ‘봉하찍사’를 자처하는 비서관님의 섬세한 배려에 감사드린다. 홈페이지는 대통령과 찍은 사진을 방문객이 다운로드할 수 있게 ‘자료실’의 ‘봉하사진관’에 올려둔다. 거기 50장의 사진은 그날 우리의 분위기를 너무나 잘 살려준다. 평생 잊을 수 없는 하루다.

 

(아래 주소를 누르면 사진이 있는 곳으로 바로 갑니다)

http://pic.knowhow.or.kr/picture/view.php?start=15&pri_no=1211592391&mode=

 

 

** 언니와 나는 이번 여행을 분업하기로 했다. 봉하마을 이야기는 내가, 남해여행 부분은 언니가 써서 각자 자기 블로그에 올리기로 했다. 여행기가 이원생방송이다. ^^

 

(이어지는 여행이야기를 보고 싶으신 분은 아래주소를 꾹 누르세요.)

http://blog.daum.net/bbisunssi/12993018

 

 

 

 

   

 

 

 

 

 

  

 

 

 

 

 

*노사모 자원봉사센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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