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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울타리

초록신호등

M.미카엘라 2010. 2. 4. 01:59

  

 

“엄마, 올해 새학년부터는 하지 마세요!”

“왜에?”

“그냥 언니도 졸업하고 또 오래 하셔서 힘드실 것 같으니까. 오늘 너무 춥대는데…”

“괜찮아. 그래봐야 일 년에 며칠이나 한다고… ”

 

그렇게 여유 부리며 녹색어머니회 등굣길 교통 봉사하러 나갔다. 그런데 헉~ 50분 동안 뺨을 스치는 칼날 같은 공기에 귀가 아리다 못해서 떨어져 나갈 것 같다. 보통은 하얀 장갑을 끼는데 그 위에 니트 장갑을 하나 더 꼈는데도 손이 시리다. 시간이 지날수록 발도 시리다. 차가운 철제 호루라기를 입에 물면서 이거 입술에 달라붙으면 어쩌지 하는 우스운 걱정도 들었다. 내복 위에 붙인 손바닥만한 핫팩, 너 아니었으면 어쩔 뻔 했더냐.

 

소미가 입학할 때부터 시작해서 6년 동안 녹색어머니회 일을 했다. 소은이가 입학한 후엔 소은이 이름으로도 한 번 더 서기 시작했다. 근데 어찌된 건지 지난해에 이미 내 몫을 다 했는데 개학하자마자 또 내 차례가 되어 총 세 번을 서게 되었다. 뭐 괜찮다. 그래봐야 모두 보름도 채 안 된다. 소은이가 이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하려고 한다.

 

솜손네 학교 앞은 길은 좁은 편인데 교통량이 많다. 거기다 길이 세 갈래로 갈라지는 교차로도 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붙어있는 이곳은 아침이면 길이 아이들로 빽빽하다. 우리 딸이 올해 중학생이 되니 이제 중딩들이 더 많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노란점퍼 입은 나 같은 아줌마를 투명인간으로 보는 아이들이 더러 있다. 길이 좁다보니 긴장감이 풀어져 내 수신호에 아랑곳하지 않고 막 건너는데, 미친 속도로 코너를 도는 차 때문에 간이 철렁할 때가 있다. 그런가 하면 감사하다고 인사하는 아이들도 아주 가끔씩 있다. 뉘집 자식인지…이뿐 것들! 교복 입은 뒤태도 이쁘고나! 뭐 중얼중얼 그러기도 한다.

 

이 혹한에 교실에서 실내화로 쓰는 삼선 슬러퍼를 신고 등교하는 언냐들의 애처로운 발, 완전 타이트한 스키니 바지가 된 오빠야들의 바지, 끈을 있는 대로 늘려놔서 언니의 엉덩이에서 매달려가는 책가방, 도톰한 검정타이즈를 버리고 살색스타킹을 신은 추워 시퍼런 언냐들의 다리, 머리에 젤을 떡지게 발라 삐치게 하여 더 추워 보이는 오빠야의 헤어스타일…, 2010년 서울 어느 중학교 앞 풍속도다.

 

소미는 어제 중학교 배정을 받아왔다. 가깝게 걸어서 갈 수 있는 개교한 지 8년 정도 된 학교다. 다른 큰 봉투 하나엔 각 교복브랜드 업체의 카달로그가 든 교복안내장이 들어있다. 흥분한 아이는 어제 오늘 그 카달로그를 꺼내보고 또 꺼내본다. 소은이와 모델들이 입은 교복을 품평하면서 교복 입는 일이 꿈같이 설렌다고 한다. 뭐 걱정되거나 긴장되거나 겁나는 심정은 없냐 했더니 망설임 없이 “전혀! 왜요 엄마? 그래야 돼요?” 한다. 새로운 시작 앞에 두고 거리낌도 없고 긴장감도 없다. 태평한 표정에 자신감이 넘친다.  

 

저녁에 남편이 퇴근하면서 애들 먹으라고 재밌는 아이스크림을 사들고 들어왔다. 이름이 절묘하다. ‘솜처럼’ 소미생각하고 사온 아이스크림이란다. 우린 집에서 소미를 '솜!'하고 부른다. 근데 집에 놀러온 소미 친구들도 '솜!'하고 부른다. ㅋㅋ... 아닌 게 아니라 소미가 언제까지나 지금 솜(소미)처럼 자신감 있고 긍정적인 사람이 되길 바란다. ^^ 엄마도 힘닿는 데까지 힘써줄 거다. 그래서 물었다. “근데 솜! 중학교에 가서도 녹색어머니회 있으면 말해. 엄마 거기서도 서줄 테니… 오늘보다 더 추워도 끝내주게 잘 서줄 테다. ㅎㅎ”   근데 아침부터 떨었더니 하루 종일 한기가 들어서 14시간 발열한다는 핫팩을 떼지 못했다. 그대로 겉옷만 갈아입고 외출해서 돌아다녔다. 그랬는데도 식당에서 코트를 못 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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