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뼘 성장드라마
긍정의 힘 본문
오늘 아카데미상이 발표되었다. <127시간>의 주연배우였던 제임스 프랭코가 남우주연상을 받길 기대했는데 수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어머니가 VIP석에 앉아 지켜보는 가운데 제83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사회를 봤다는 단신을 읽었다.
<127시간>은 대자연을 즐기는 한 젊은이가 등반 중 협곡의 좁은 틈으로 떨어져 큰 암석 사이에 오른손이 끼는 사고를 당한 후, 5일 만에 극적으로 등산용 칼로 자기 팔을 자르고 살아나온 2003년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다. 주인공 아론은 행선지를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당한 사고로 산악용 로프와 등산용 칼, 그리고 500ml의 물 한 병으로 버티며 127시간 동안 치열한 사투를 벌인다. 그 과정에서 그는 자신의 지난 삶을 돌아보며 친구, 연인, 가족 그리고 그가 사고 전에 만난 사람들을 떠올린다.
대단한 건 그가 가지고 갔던 소형비디오 카메라로 자신의 하루를 기록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믿기지 않을 정도로 긍정적이며 유머러스하고 따뜻하다. 거기 어디서도 자기 연민이나 후회, 원망을 찾아볼 수 없다. 가족들에게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고 바위틈으로 들어오는 오전의 작은 햇살 한 줌을 쬐는 기쁨을 말한다. 나는 이 부분이 영화에 극적인 재미를 더 주려고 만든 설정인 줄 알았다. 그런데 실제 인물인 아론 랠스톤은 진짜 그 당시 자기 모습을 촬영했고 가족과 가까운 친지에게만 공개한 비디오 영상을 주연배우인 제임스 프랭코에게도 보여주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영화를 다 본 후 나는 이 사람을 죽음의 직전에서 건져 올린 힘은 자기 팔뚝을 잘라낼 정도로 ‘독함’이 아니라 ‘긍정의 힘’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감독이 아론 랠스톤 실화에서 주목한 것도 ‘그가 죽음의 순간에서 어떻게 살아 돌아올 수 있었는가? 그 힘은 무엇이었을까?’였다는데, 감독의 생각과 별개로 나도 그런 해답을 찾게 된 것이다. 아마 보통 사람 같으면 127시간이 아니라 10시간도 못 버티고 지레 미쳐서 죽었을지도 모를 극한의 상황이다. 하지만 그는 이성을 잃지 않도록 자신을 다스리고, 감정이 부정적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게 끊임없이 여러 가지 자기 주문으로 모진 시간을 이겨나갔다. 결국 팔을 자르는 일을 감행한 힘은 삶에 대한 치열한 긍정성이 낳은 ‘용기’라는 생각이 든다.
본영화 후 에필로그가 흥미롭다. 아론 랠스톤은 여전히 사고 이전 때처럼 대자연을 즐기고 등반을 한다고 한다. 달라진 점이 한 가지 있다면 이제는 가족들에게 ‘행선지를 남긴다는 것’ 뿐. 보통 우리는 어떤 음식에 한번 체해서 고생을 하면, 그 음식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는데 다시는 그 음식을 먹으려고 하지 않는다. 또 먹으면 다시 체할 것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렇게 큰 사고를 당한 후라면 당연히 산 쪽으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산을 오른다는 자막과 함께 의수를 단 손을 흔들며 눈보라 속을 걷는 사진 한 장이 나온다. 그 순간 핑계를 주렁주렁 달고, 안 되는 이유를 거품 물고 늘어놓은 삶은 아니었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힘든 시간일수록 더 긍정적으로 해야 할 일, 되게 할 일에 초점을 맞추며 살아야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참 오랜만에 아카데미 영화제에 관심을 가져보았다. 고등학교 때는 <스크린>이라는 잡지를 빌려보면서 수상작, 수상자, 혹은 후보들의 프로필을 샅샅이 훑어보며 국내개봉을 기다렸었는데…. 제임스 프랭코의 연기는 시사회에서 실제 인물인 아론 랠스톤을 울렸다고 한다. 영화의 힘은 참 대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