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뼘 성장드라마
엽기적인 그녀들의 말, 말, 말! (9) 본문
<별 걸 다>
방문과 방문 사이 폭 10여 센티쯤 되는 벽지 바른 긴 공간이 있다. 거기가 두 아이의 키재기 자리로 쓰인 지 어언 3년이 되어간다. 이런 저런 눈금과 숫자, 손때로 더러워진 벽을 가리키며 소은이가 물었다.
“엄마, 우리 이사 갈 때 이 벽도 떼어갈 거죠?”
<생뚱맞게, 조금은 민망하게>
휴일에 미----루 선생님을 만난 적이 있다. 소은이가 뜬금없이 선생님 보고 하는 말.
“선생님, 입 ‘아’ 벌려보세요.”
“아~”
“히야, 이빨이 삐뚤빼뚤해.”
제 이모가 옆에 있다가 웃으며 하는 말.
“소은아, 그건 그렇게 길게 말하는 게 아냐. 따라해 봐. 덧니!”
<씩씩한 그녀들, 위병소에서>
군인들의 일과시간 이후부터 남편의 부대 안 넓은 솔밭에서 운동을 하고 있다. 출입증을 가진 군인가족들은 가능하다. 그 곳에 딸들이 찾아왔다. 삼엄한(?) 위병소의 경비를 뚫고. 내가 놀라 어찌 들어왔냐 물으니 초병들과 나눈 대화를 또렷하게 전했다.
“여기요. 양재형씨라구 여자사람이 운동하러 들어갔거든요. 우리 엄만데 찾으러 왔어요. 우리는 ○○○ 대위의 딸이예요.”
“헌병학처?”
“네.”
“(한참 생각하는 듯하다가 곧 믿을 만하다는 얼굴로)그래? 엄마 찾을 수 있겠어?”
“네.”
“그럼 들어가 봐. 차조심하구.”
저 괄호 안의 지문 ‘믿을 만하다는 얼굴로’는 소미의 표현이다.
<그건 말야>
소은 질문.
“엄마, 왜 결혼만 하면 그냥 애기가 생기는 거예요? 왜 결혼만 하면 배가 불룩해져요?”
소미 대답.
“넌 아직 정자 난자를 모르는구나. 결혼하면 사랑하게 되는데, 그게 시작이야.”
<영화, 제목만 척 보면 알 수 있어!>
소은이가 주일학교에 다녀와서 물었다.
“엄마, 우리 주일학교 간 사이 아빠랑 뭐했어요.”
“응, 어디 좀 갔다 왔어.”
“어디? 데이트?”
“응.”
“뭐했는데?”
“영화 봤어.”
“무슨 영화?”
“있어. 손손은 말해도 잘 모르는 영화야.”
“뭔데요오~ 제목이 뭔데요?”
“<달콤한 인생>”
“우와~ 맛있겠다. 그럼 펴엉~생 오렌지맛 사탕 같은 거 먹는 거예요?”
*** <달콤한 인생>은 무자비한 총질과 잔인한 폭력이 난무하는 핏빛 가득한 느와르 영화다. 이병헌의 연기는 홍콩 느와르의 주윤발보다 프랑스 느와르의 알랭들롱 분위기에 가까웠다.
<엄마는 답답해!>
뒷동에 사는 생후 4개월 된 아기 하은이를 두어 시간 우리 집에 데려와 봐줄 때다. 하은이가 보채기 시작했다. 치과진료를 받기 위해 간 엄마가 모유를 먹이기 때문에 조금 걱정이 되었다. 나도 아이들 모유로 길러서 알지만 분유보다 모유는 소화가 잘 되기 때문에 좀 자주 먹여야 한다.
“오오, 하은아, 엄마 올 거야. 좀 만 기다리자. 금방 온댄다 하은이 엄마. 착하다 하은이~"
내가 안고 이리저리 달래는데 소은이가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다.
“엄마! 엄만 뭐하고 계세요? 엄마가 빨리 하은이 젖 주세요. 우리도 젖 먹여서 길렀다면서… 아휴 참!”
“?!…”
<짐작>
소미가 자려고 이불속에 들어가서는 아까부터 궁금했다는 듯이 갑자기 물었다.
“엄마, 동주이모 왜 병원 갔어요? 하은이가 또 아파요?”
“아니, 하은이가 아니고 지금은 삼촌이 아프대.”
“어디가요?”
“으음, 그런 게 있어.”
“뭔데요? 뭔데요?”
“음…음… 치질…이래.”
소미는 벽 쪽으로 돌아누우며 혼잣소리로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치질?… 그럼 이빨이 아픈 건가?"
그럼 치질(痔疾)이 아니고 치질(齒疾)? 말 된다.
<그녀의 특별한 주전부리>
소은이랑 장을 보러 갔다. 웬만큼 살 것 다 사고 계산대로 가려고 하는데 소은이가 “엄마, 잠깐!”을 외쳤다.
“엄마, 나 먹고 싶은 거 있는데… 사도 돼요?”
“뭔데? 과일이랑 과자 다 샀잖아.”
“이거…, 나 이거 좋아해요. 이거 한 봉지만 살게요. 네?”
그녀가 등 뒤에 숨겼다 내민 간식은 바로 이거다.
가로
세로 10센티 안팎의 작고 귀여운 봉지. 짧게 잘라 들어있는 마른미역을 그릇에 쏟아놓고 그녀는 오늘도 만화영화 보면서 그 짭쪼롬한 맛을 즐긴다.
(특정회사의 광고가 아님을 밝혀둡니다. ㅋㅋ…)
여러분은 생각나시나? 어린시절 마른미역이며 다시마, 김 같은 것 단단히 묶어 매서 머리에 이고 이 동네 저 동네 미역을 팔러 다녔던 행상을. 그 행상의 미역엔 캉캉치마 속같이 꼬불꼬불하게 뭉쳐진 애들 주먹만한 미역귀가 달려있었다. 요즘은 그것을 거의 볼 수 없는데 난 어릴 때 그걸 참 좋아했다. 엄마가 사들인 미역의 미역귀 질긴 한끝을 잘라 입에 넣고 한참 있으면, 침에 불은 미역귀가 오돌오돌 짭쪼름한 게 참 맛있었다. 특별한 간식(?)을 선호하는 우리 귀여운 소은이라면 그 맛을 알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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