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뼘 성장드라마
엽기적인 그녀들의 말, 말, 말! (14) 본문
* 중간에 <에버랜드> 하나 더 추가했습니다!
<길>
지난 해 소미가 한참 남자, 여자, 사람의 몸에 대해서 질문을 많이 하며 관심이 많길래, 재미있게 만들어진 성교육 애니메이션 <아이들이 사는 성>이라는 비디오테이프를 구입했다. 가끔씩 지금도 꺼내서 잘 보는데 하루는 이것을 보다가 소은이가 물었다. 아빠의 몸속에서 나온 정자가 엄마의 난자가 있는 자궁을 향해 긴 여행을 한다는 설명과 함께, 꼬물꼬물 올챙이 같은 정자들 수억 마리가 끝이 잘 보이지 않는 긴 통로를 따라 헤엄치는 장면이 나올 때였다.
“엄마, 그럼 나도 저렇게 엄마 몸속에 가기 위해서 저런 길을 갔던 거예요?”
“그럼! 어떤 아기씨든 다 저 길을 지나왔을 거야.”
그랬더니 아주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혼잣소리로 중얼거렸다.
“어, 이상하다. 나는 이런 길 왔던 거 기억 안 나는데…”
<이유>
소은이가 작은 참외 하나를 깎아서 접시에 놔줬더니 다 속만 긁어 먹고 있었다.
“손손, 너 왜 이렇게 속만 파먹고 있어? 이렇게 음식 먹으면 안돼.”
“아이 참, 엄마. 아끼다가 똥 된다는 말도 있잖아요. 그래서 아끼지 않고 먼저 먹는 거예요.”
“??...!!”
<비유>
지난 여름 비가 하늘에 구멍 뚫린 것처럼 계속 며칠째 내릴 때였다. 소은이가 창밖을 내다보면서 하는 말.
“어휴, 비가 너무 오네. 선녀들이 양동이 내던지면서 싸우는 것 같아.”
<무엇이든>
남편이 한 식사약속에 나와 솜손도 함께 가게 되었다. 약속장소가 사철탕 하는 집이었는데 그곳으로 가는 차 안에서 남편 동료에게 전화가 왔다. 아이들도 ‘그 고기’ 먹느냐, 안 먹으면 다른 메뉴 시킬까, 뭐 그런 걸 묻는 모양이었다. 굳이 ‘그 고기’가 뭔지 모르지만 애들이 잘 먹는다면 그냥 좀 먹이고 싶었던 남편은, 전화를 끊고서는 내게 의미 있는(?) 눈길을 보내며 더듬하게 물었다.
“애들… 고기…먹지?”
그랬더니 내가 대답할 사이도 없이 소은이가 앞좌석 사이로 고개를 톡 내밀면서 한다는 말.
“그럼요. 우린 육식동물이예요.”
<꽃>
우리 집에 온 손님의 차를 탔던 소은이. 차 주인이 우리 집에 올 때 어디선가 한 송이 꺾어 두었던 코스모스를 집어 들더니, 시들어서 목이 휘어진 꽃을 보며 애처롭다는 듯이 말했다.
“엄마. 여학생꽃이 할머니꽃이 되어버렸네.”
<비오는 날>
비 오는 날, 외출하려고 차를 탔는데 유리창에 방울방울 촘촘하게 빗물이 맺힌 것을 보고 소은이가 소리쳤다.
“와! 유리창이 수두 걸렸다.”
<위로>
의자에 앉아있는 내 옆에서 까닥까닥 목침 위에 올라서 위태롭게 노는 소은이를 보고 다칠 수 있으니 그러지 말라고 했더니, 들은 체도 안하고 까닥까닥하다가 결국 목침 모서리로 내 새끼발가락을 찧고 말았다. 눈물이 핑 돌게 아파서 발가락을 감싸 쥐고 끙끙대고 있는데, 소은이 기껏 위로한다는 말이 가관이다.
“엄마, 맘껏 우세요. 괜찮아요. 아프면 맘껏 우세요.”
<에버랜드>
10월 어느 기간 중 군인들은 에버랜드 무료입장이라고 한다. 그래서 남편은 소대장 인솔 아래 주말과 휴일을 이용해 두 차례 나누어 부대 병사들을 에버랜드에 가게 하는 모양이었다. 그 소리를 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이가 물었다.
“그럼 부대 군인아저씨들이 많이씩 에버랜드에 가는 거예요?”
“응.”
“우와~ 그럼 에버랜드가 아주 얼룩덜룩하겠다.”
<식당에서>
동네에서 유명하다는 한 두부 집에 처음 갔다. 지은 지 그다지 오래 되지 않은 깨끔한 건물에 음식 맛도 좋아서 만족스러웠다. 다 먹고 나오는데 현관문 위쪽에 건물 상량식 때 달았음직한 실타래 감은 마른 통북어 한 마리가 보였다. 아이라도 관찰력이 좋아 뭘 허투루 보지 않고 꼭 짚고 넘어가는 소은이가 이걸 그냥 지나칠 리 없었다.
“어, 이상하다. 저기 굴비가 왜 올라가있지?”
<힘들어>
지난 주에 상암 월드컵경기장 옆에 있는 하늘공원에 갔었다. 예전에 ‘난지도’라고 불렀던 쓰레기 산이 근사한 억새밭으로 조성되어 썩 괜찮은 시민들의 휴식처가 되고 있었다. 한창 억새축제가 열리고 있었던 아름다운 공원을 한 바퀴 돌아 나오는데, 길은 잘 닦여 있지만 평지가 아니고 야산 하나를 올랐다 내려오는 것 같은 느낌이라 사람에 따라선 힘들게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평소 걷기 싫어하는 우리 소은이, 역시나 하늘공원을 내려와서 길 옆 벤치에 털썩 주저앉으면서 두 손으로 다리를 여기저기 꾹꾹 주무르며 혼자 한다는 말.
“아이구~ 어디를 주물러야 할지 모르게 아픈 다리야~”
'그녀들의 말,말,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엽기적인 그녀들의 말, 말, 말! (16) (0) | 2008.06.11 |
---|---|
엽기적인 그녀들의 말, 말, 말! (15) (0) | 2007.05.13 |
우리는 정말 부자일까? (0) | 2006.10.17 |
엄마는 '폐인 모드' (0) | 2006.06.20 |
엽기적인 그녀들의 말, 말, 말! (13) (0) | 2006.06.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