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뼘 성장드라마
엽기적인 그녀들의 말, 말, 말! (16) 본문
<듣고 보니 화나네>
사촌오라버니 댁에 충직한 진돗개 한 마리가 있다. 평소 닌텐도보다 강아지가 더 좋다고 노래를 부르는 소미가 ‘진순이’를 보면서 강아지 기르고 싶은 마음에 더 안달이 나서 나를 졸라댔다.
“엄마, 강아지 한 마리만 기르게 해주세요 네? 동생처럼 잘 보살필게요.”
그러자 소은이가 발끈한 목소리로 왈.
“그럼 난 뭐야? 강아지가 동생이면… 나는 개야?”
<너무 진지한 손손>
소미: 엄마, 퀴즈 하나 낼게요. 일본의 제일 구두쇠 이름이 뭐게~요?
나: 어, 그거 알았었는데, 지금은 까먹었당.
소미: ‘도나까와 쓰지마’예요. 히히~ 그럼 일본의 제일 부자는 누구게~요?
나: 일본의 제일 부자? 음...이건 모르겠는데.
그랬더니 소은이가 어이 없다는 듯이 너무도 진지하게.
“엄마, 엄마는 책도 읽으셨으면서도 그게 누군지 모르세요? 손정의잖아요, 손정의.”
아하... 일본 소프트뱅크 CEO인 재일한국인 사업가 손정의. 우리 손손은 엉뚱한 데서 정색을 하며 진지해서 탈이다. 그건 또 언제 봤누?
<동정심>
묵호에 갔을 때다. 건어물상점을 지나는데 나무꼬챙이에 쭉 끼워 파는 노가리를 보고 소미가 물었다.
“엄마, 저게 뭐예요?”
“노가리. 명태는 알지? 그 명태 새끼야.”
“어우~ 불쌍하다. 어린 나이에 죽다니…”
<병원이 놀이공원이라면>
소미가 "엄마, 병원에 안 가세요?”하고 묻는다.
“오늘은 늦었어. 병원 문 닫았겠는데.”
그랬더니 소미 왈.
“근데 병원은 야간개장 안 해요?”
<양방언의 실력>
예전에 녹화해놓은 재일음악인 양방언의 내한연주회를 가끔 아이들과 함께 본다. ‘프론티어’라는 곡은 태평소의 독주가 유난히 빼어나게 들리는데, 어느날은 이 부분에서 소은이의 감상평이 근사하다.
“우와~ 저 악기 하나로 저렇게 흥겨운 기분을 낼 수 있다니… 저 음악에서 태평소가 빠지면 재미가 없어요.”
“이야~ 우리 소은이 생각이 더 근사하다 모.”
하면서 한껏 추켜 주었는데, 곧 양방언이 피아노 연주를 하는 부분으로 넘어가자 하는 말.
“근데 엄마, 양방언은 체르니 몇 번 칠까요?”
<동생보다 케이크>
케이크를 사들고 가다가 계단에서 소은이가 덜컹하고 헛발을 딛었다. 그랬더니 소미가 얼른 걱정하며 한다는 말이 어째 쫌…
“소은아, 케이크 괜찮아?”
“아이구, 솜솜! 넌 소은이가 괜찮냐고 물어야 되는 거 아냐? 케이크만 걱정 돼?”
“에이 참, 엄마도. 소은이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낫지만, 케이크는 망가지면 원래대로 못하잖아요.”
하면서 히히~ 웃는다.
<준비물>
현장학습 가기 전날. 선생님이 나누어주신 안내문을 보면서 준비물을 챙기다가 소은이가 묻는다.
“엄마, 여기 비닐봉지도 하나 넣으라고 하는데, 이건 쓰레기 담으라는 거예요? 토하라는 거예요?”
<방귀, 냄새가 눈에 보여요!>
어느 날, 소미가 속이 안 좋았는지 시간차를 조금씩 두고 계속 방귀를 뽕뽕 뀌어대니 소은이가 손사래를 치며 소리쳤다.
“어휴, 고만 좀 해. 아주 뿌옇다 뿌얘!"
<유괴범을 따돌리는 법>
혜진이 예슬이 사건이후 유괴범, 아동 성추행범에 대한 공포가 극에 달했을 때, 아이들도 밖에 나가 노는 것이 겁이 나서 이런저런 준비를 단단히 했다.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모자를 쓰고 핸드폰을 목에 건 소미가 화장실에 앉아있는 소은이보고 빨리 나오라고 재촉을 했다. 그리고 너무 좋은 옷 입으면 유괴범의 표적이 된다는 것을 어디서 들었는지 동생에게 걱정스럽게 한 마디 조언한다.
“소은아, 너 옷 싼티나게 입어.”
그랬더니 별 걱정을 다한다는 듯이 바로 튀어나오는 소은이 대답.
“언니두 참, 내가 언제 싼티나게 안 입은 적 있어?”
아, 내가 미쵸...
<머리 가르마>
소은이가 머리를 감고 나서 빗을 들고 와 가르마를 타달란다. 옆 가르마를 타면서 내가 말했다.
“이거 국경선이야. 땅 나누기.”
이랬더니 소은이가 재치 있게 대번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나라이름을 댄다.
“이쪽 많은 땅은 그리스, 이쪽 조금인 땅은 트로이. 다음엔 가운데 가르마 타야지. 트로이 불쌍해.”
<딸기>
우리 집엔 ‘딸기’라는 이름의 캐릭터 인형이 있다. 꼭 설정된 성격이 소은이 닮은 이 인형은 소은이가 아주 좋아해서 침대 맡에 두고 산다. 아침에 잠을 깨우니 딸기의 큰 머리통을 껴안고는 영 안 일어난다. 내가 딸기를 빼앗아서 휙 침대구석으로 던지며 말했다.
“에잇, 너 저리 가! 우리 손손이는 엄말 더 사랑해.”
이러면서 소은이 팔베개를 하느라 장난치며 품으로 파고들며 껴안았더니, 소은이가 억지로 눈을 뜨며 날 껴안는다.
“히히, 손손! 저거 봐라 딸기. 내가 던져버렸당.”
그때 아직도 잠이 덜 깬 채 눈부신 표정의 소은이가 거꾸로 쳐 박힌 딸기를 보며 뱉은 딱 한 마디.
“비보이!”
<선문답>
거실에서 신문을 보다가 나 혼자 중얼거렸다.
“에휴, 물가도 기름 값도 계속 오르고 주가도 난리고, 앞으로 사회가 참 큰일이다.”
그랬더니 방에서 공부하던 소은이가 톡 그 말을 받는다.
“에이, 엄마. 내가 지금 사회공부 열심히 하고 있으니 앞으로 사회걱정 마세요.”
<김치>
아이들은 내가 열무와 얼가리 배추를 반반씩 섞어 담는 김치를 제일 좋아하고, 언제나 맛있게 담가졌는지 그 평가를 초조하게 기다리는 내게 용기를 준다.
소은이 말.
“엄마가 담그는 이 김치는 최고예요. 이번에도 좋은 냄새 나고 맛있어요.”
소미 말.
“맞아요. 이번에도 성공이예요. 근데 이 김치에서는 외갓집 냄새 나.”
<어떤 꽃>
“엄마, 이 꽃 좀 보세요. 이런 꽃 보셨어요? 엄마께 드릴게요.”
소은이의 말에 김치 담다가 돌아보니 얼가리 배추꽁다리 잘라서 만든 꽃다발. 누가 이런 꽃 받아보신 적 있으십니까?
<초짜의 한자실력 1>
전주한옥마을 갔을 때다. 막 한자공부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소은이가 한 음식점 간판을 보고 자신 있게 읽는다.
“아, 나 저거 알아. 월빛!”
<초짜의 한자실력 2>
곱창집에 갔을 때다. 동그란 철판의 손잡이에 ‘신토불이(身土不二)’라고 음각된 글씨를 보고 소미가 신토불이가 뭐냐고 물었다. 내가 설명하자 소은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진지하게 말했다.
“아, 이게 ‘신토불이’예요? 난 또 ‘곱창구이’라고 쓴 건 줄 알았지.”
우린 다 뒤집어졌다. 뒤이어 언니의 말이 한 수 더 뜬다.
“우와~ 그래도 우리 소은이 25%는 맞췄다 모…”
<기대하는 반찬>
“큰이모네 집에 가자.”
“우와~”
그런데 사실 큰언니는 시골에 살면서 조카들이 오면, 어린 애들 입맛에 맞는 음식 해줄 게 없다고 걱정이 많은 사람이다. 그런데도 애들은 기대가 크다. 소은이 왈.
“우와~ 이모네 집에 가면 얼마나 맛있는 걸 많이 해주실까? 나의 목적은… 두구두구두구…”
나는 저 입에서 무슨 엉뚱한 음식이 나올까 은근히 걱정이 되는데 이윽고...
“나의 목적은… 깻, 잎~!”
뭔 애들 반찬. 우리 애들, 양념이 푹 밴 깻잎. 그거면 되는 거다. 언니 걱정 마슈~
<난 아무 말도 안 했다>
사극 ‘이산’에서 정조가 민심을 보려고 능행을 나갔는데 농민들이 면화 밭을 태우는 장면이 나왔다. 청나라에서 면화가 수입되어 값이 떨어져 농민들이 그냥 태우는 것. 그 장면을 본 소은이의 말. (결단코 나는 이런 문제에 대해서 아무 말도 안 했다.)
“미국 쇠고기 수입한다니까 우리나라 소값이 뚝 떨어지는 얘기랑 똑같네.”
<너무 섬세한 그녀>
소미와 나는 ‘이산’을 보면 좀 짜증이 난다. 소미와 나는 극의 흐름을 따라가며 한참 몰입하는데, 소은이는 잘 보다가 한 마디씩 깨는 소리를 한다. 우리는 그때마다 ‘아후~ 그, 만, 해!’라고 하며 원성의 소리를 한다.
“어, 송연이 당의 색깔 달라졌다!”
“어, 송연이 머리에 파리 앉았다.”
“엄마, 요즘 요기 아파트 올라오는 데 핀 분홍철쭉 저 송연이 옷 색깔이랑 똑같지 않아요?”
“홍국영 모자 귀 눌려 아프겠다.”
“완풍군은 왜 안 나오지? 엄마, 엄마는 문효세자(이산과 송연 사이의 아들)가 귀여워요? 아니면 완풍군이 귀여워요? 나는 완풍군.”
* 소은이가 만든 사극 <이산>의 성송연(의빈 성씨). 크기는 길이 7~8센티밖에 안 된다.
도화서 출신인 송연이답게 붓을 비롯한 화구가 가지런하다.
(이거 인터넷에 올리지 말라고 그랬는데, 나 죽었당... 어찌 이런 걸 혼자 보리오...)
<오이>
매주 수요일 이웃 아파트 단지에서 장이 선다. 채소노점을 이리저리 둘러보는데 소미가 무언가를 가리켰다.
“엄마, 저건 뭐예요?”
“으응. 노각. 늙은 오이.”
“어떻게 저렇게 돼요?”
“그냥 안 따고 좀 내버려두면 저렇게 크고 누렇게 변해. 근데 저거 살만 깎아서 고추장에 무쳐먹으면 아작아작 맛있어.”
“아하, 오이구나.”
“오늘 저녁에 저거나 해먹을까?”
내가 노각을 하나 사서 장바구니에 담고 돌아서니 소미가 이런다.
“엄마, 이 노각이 저기 있는 파란 오이한테 이럴 거예요. ‘어이, 젊은이! 나 먼저 가네.’”
<박지성의 소속팀>
요르단과 월드컵 예선전을 보던 날. 소은이가 저거 보라며 말했다.
“저거 봐. 박지성 선수 등번호가 7번인데 우리 반 남자애들은 자꾸 13번이래요.”
내가 말했다.
“맞아. 우리나라 대표팀으로 뛸 땐 7번이야. 그럼 영국 팀에서 뛸 때 13번이던가? 애들이 그거 보고 그러는 거 아니니?”
그랬더니 소은이가 알겠다는 듯이 아주 자연스럽고 자신감 있게 말한다.
“아하, 영국 팀 AIG?"
(ㅎㅎㅎ 아시다시피 AIG는 박지성 소속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후원사다.)
<성모님께 해드릴 수 있는 일>
일요일에 저녁미사를 갔는데, 공교롭게 해가 뉘엇뉘엇 질 때라 성당 뜰의 성모상이 얼굴에만 동그랗게 따가운 햇볕을 받고 있었다. 소미 소은이 두 아이는 그 앞에서 두 손 모아 경배하며 중얼거린다.
소은: “성모님 선글라스 끼워드려야겠다.”
소미: “선크림도 발라드려야겠어.”
다시 소은: “이왕이면 선캡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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