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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의 말,말,말!

엽기적인 그녀들의 말, 말, 말! (15)

M.미카엘라 2007. 5. 13. 19:23
 

<힘든 이유>

 군인성당엔 군에 입대한 신학생이 있는데 신자들은 모두 ‘학사’라고 부른다. 그리고 군에 입대하기 전까지 성당에서 주일학교 교사를 지냈다는 군종병 ‘다니엘’(세례명)은 성당 주일학교 아이들과 가장 잘 놀아주는 어른이다. 두 사람 모두 군인 신분이지만 얼마 전 다니엘은 이라크로 파병 갔다. 다니엘이 떠나기 전 내가 소은이한테 물어본 말이다.

 “소은아, 학사님이 좋아? 다니엘 선생님이 좋아?”

 “다니엘 선생님이 더 재밌긴 한데……”

 “그럼 학사님이 더 좋아?”

 “아니, 모…학사님도 좋긴 한데 학사님은 애기들을 더 좋아해요. 애기들하고만 노셔.”

 “에구, 너희들 주일학교 아이들하고 놀아주기에 힘이 부치시나보다. 너희들이 하도 짓궂게 놀아달라고 달라붙고 매달리고 하니까 혼자서 힘이 딸리신 거야.”

그랬더니 소은이가 잠자코 몇 초 생각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며 할머니 같은 말투로 천천히 말했다.

 “아니예요 엄마.… 늙는 거야.”

 

 <수녀님의 직업>

 이것도 좀 지난 이야기다. 

 “얘들아, 우리 내일 모레 수녀 이모네 수녀원 갈 거야. 가서 수녀원 최고 어른인 총장 수녀님 뵐 거야. 수녀원 세우신 분.”

 그랬더니 소은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화들짝 놀랍다는 듯이 말했다.

 “우와~ 그럼 건축가세요?”


 <약식>

 애들 간식으로 약식을 만들어 먹을 만하게 잘라 비닐 랩에 싸서 얼려두었는데, 소은이가 전자렌지에 넣고 데우더니 하는 말.

 “엄마, 약식이 화난 것 같아. 김이 푹푹 나.”

 

 <밤눈>

 우리 아파트에는 자동차들 서행하라고 50여 미터 되는 곳에 요철이 다섯 개나 있는 곳이 있다. 어둠 속에서 소은이가 내 손을 잡더니 말했다.

 “엄마, 내 손 꼭 잡고 내가 크게 발을 띄면 엄마도 그렇게 건너세요. 그러면 요철 잘 건너요. 엄마, 근데 왜 이렇게 깜깜한데도 제가 요철 있는 델 잘 아는지 아세요?”(사실 별로 깜깜하지 않다. ㅋㅋ)

 “아니.”

 “내 몸에 비타민 A가 많아서 그래요.”


 (이게 무슨 소린가 하실 거다. 나도 첨엔 금방 이게 무슨 소린가 했다. 그러나 곧 ‘비타민 A가 부족하면 야맹증에 걸린다’는 말을 어디서 보고 하는 소리란 걸 알았다. 고로 자신은 비타민 A가 많아서 밤길에 요철도 잘 보인다는 말. 아휴, 딸이 너무 유식해서 못 알아들을 뻔 했다는… ㅎㅎ)


 <병원에서 1>

 학교에서 실시하는 건강검진을 가까운 지정병원에 가서 해야 했다. 간호사가 팔에서 조금 채혈한 후, 주사바늘 찔렀던 부분을 꼭 누르고 3분만 있으라고 손가락 세 개를 치켜세우며 이르자 소은이가 한다는 말.

 “아, 아깝다. 모래시계 가져올 걸.”

 간호사가 깔깔 웃었다.


 <병원에서 2>

 소은이가 채혈한 후, 같이 간 친구 윤주가 채혈을 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소미가 미간을 찌푸리며 윤주에게 물었다.

 “주사 아파? 난 꽉 묶은 고무줄이 더 아프던데. 그치?”

 “맞아.”

 그랬더니 그 옆에 서서 알콜 솜으로 바늘꽂았던 자리를 꼭 (3분 간) 누르고 있던 소은이가 또 한 마디 한다.

 “그건, 주사 아픈 거 잊으라고 꽉 묶는 거야. 그러니까 아프지. 아파야지.”

 간호사가 또 깔깔 웃었다.


 <고구마>

 고구마 삶으려고 씻는데 소은이가 고구마 한 개를 집어들고 말했다.

 “엄마, 이 고구마 눈사람이 심어놓고 간 건가봐요.”

 

 

 


 <엄마가 그런 말을...>

 언니네 모자와 함께 친정을 가려고 합류했던 날 오후. 아이들이 너무 배고파해서 친정으로 가기 전 요기를 좀 했다. 먹성 좋은 청소년 조카가 허겁지겁 먹고 먼저 젓가락을 놓으니 언니가 말했다.

 “배가 찰 만큼 찼나보지?”

 “네. 근데 배불러서 외갓집 가서는 어떻게 저녁 먹지?”

 내가 걱정 말라는 듯이 말했다.

 “외갓집 가면 (배) 꺼져!”

 우리 소은이 화들짝 놀란 토끼 눈.

 “아니, 우리 엄마가 ‘꺼져!’라는 욕을 다 하시다니…”

 언니랑 나, 완전 포복절도했다.

 

<누가 더 심한가?>

 친정 식구들이 다 모였는데 무슨 얘기 끝에 큰언니가 치매 이야기를 꺼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 얼굴 자주 보면서도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 이런 증상도 치매냐, 하면서 형부가 가정의학과 의사에게 물으셨다길래 다들 말도 안 된다며 한마디 했다. 조오기 위에 청소년 조카를 둔 울 언니 왈.

 “그게 치매면 우리 다 치매 걸린 거야. 나도 옛날 영화배우 이름 생각 안 나면 재형이한테 전화해서 물어보고 인터넷 뒤지고 난린데 뭘. 그럼 나도 치매네.”

 나는 잠자코 있다가 그건 약과라는 듯 웃으며 말했다.

 “참 내, 다 비켜. 그렇게 치자면 우리 소은이가 젤 심해. 한 며칠을 밤에 이 닦으라고 하면 귤 먹어야 한대. 왜 낮에 먹거나 밥 먹고 먹지 꼭 늦은 시간에 이 닦으려고 하면 귤 먹는 게 생각나냐니깐 뭐라는 줄 알아? ‘그게요, 베란다에 갔다가 귤 상자 보면 먹어야지 하고 생각했다가도 돌아서면 글쎄 싹 까먹는 거예요.’ 어때? 모두들 이 정도로 심하시나?”


<천국과 지옥>

서울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버스를 탔는데, 탔을 때부터 만원이던 버스가 거의 한 시간 가까이 달려 우리 동네에 오도록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그대로 만원 상태였다. 나와 소미, 소은이는 끝까지 그대로 선 채 완전히 녹초가 되어 집에 돌아왔다. 집 문턱을 들어서자마자 우리 셋은 그대로 거실 바닥에 널브러졌다.

 “솜손, 고맙다. 그렇게 꽉 찬 버스 타고 오면서 짜증 한번 내지 않고 잘 와줘서. 그래서 엄마는 크게 힘든 줄 몰랐어, 다 솜손 덕분이야.”

 소미가 어른스럽게 대답했다.

 “저도 무척 힘들었는데, 엄마는 들고 계시는 물건도 많아서 우리보다 더 힘드셨을 거라 꾹 참았어요.”

 소은이가 두 다리를 쭉 뻗어 큰대자로 누운 채 말했다.

 “으아, 역시 집이 최고야. 완전히 천국 같아. 버스는 완전 지옥버슨데, 그게 결국 천국으로 오는 버스였네. 참으니까 복 받는 거야. 아,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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