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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울타리

아빠, 유치원에 가다

M.미카엘라 2004. 10. 29. 15:41

남이섬, 눈부신, 은행나무 

 

 

 

 

 

 

 

 

 

 

 

 

 

 

 

 

 

 

 소은이가 1년 동안 기다려온 그날을 맞았다. 지난 여름, 아침 일찍 일어나 유치원 가기 싫어할 때도 ‘네가 이 날을 맞으려면 유치원 다니는 걸 중단해서는 안 된다’라는 말로 간단히 꼬드긴 날도 있었으니 과연 이 날을 얼마나 잘 보내게 될지 참으로 나까지 기대가 되었다.

 

 그 디데이는 바로 ‘아빠 참여수업의 날’이다. 소은이네 유치원은 일곱 살 반은 ‘엄마 참여수업’ 여섯 살 반은 ‘아빠 참여수업’을 한다. 지난 해 소미가 나와 함께 엄마 참여수업 하는 걸 몹시도 부러워했던 소은이는 여섯 살이 되길 손꼽아 기다렸다.

 

 남편은 소은이의 이 간절한 기다림을 악용해서 한 일 주일 전까지만 해도 소은이가 뽀뽀를 안 해주면 “어, 너 그러면 아빠가 참여수업 갈지 안 갈지 생각해 볼 거야”하는 소리를 걸핏했다. 평소 소은이가 소미처럼 제 아빠에게 착착 안겨 뽀뽀나 포옹을 여간해서 잘 안하니까 맨날 그거 하자고 하면서 어른부터 그렇게 조건부다. 그러면 소은이 왈, “생각은 무슨 생각, 간다면 가는 거지!”하고 더 이상 협박하지 말라는 투로 딱 잘라버려서 우리를 아연하게 만들었다.

 

 암튼 남편과 소은이는 그런 전초전을 겪고 참여수업을 하러 갔다. 저녁 6시 40분부터 8시 40분까지. 두 시간이다. 나도 해보니까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하다보면 시간이 더 걸리기 십상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남편과 소은이는 9시 반이 다 되어 돌아왔다. 아빠가 사준 딱지통을 들고 신이 나서 시끄럽게 들어오는 소은이 뒤로 남편이 피곤한 얼굴로 들어서며 내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보였다. 뭔 일이 있었나보다 감을 잡고는 소은이를 얼른 씻겨 재웠다.

 

 아빠가 동화를 읽어주는 시간이 있었단다. 선생님이 어떤 아빠에게 부탁했는데 그 분이 원치 않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남편은 내키지 않았지만 이 날을 간절히 기다려온 소은이를 위해서 자청해서 책을 읽겠노라고 했단다. 여섯 쪽 분량의 그림책을 성의 있게 그러나 은근히 진땀 흘리며 읽기를 마쳤다고 한다. 그런데 다 읽고 난 직후, 아이들과 아빠들 사이에서 짧은 정적이 흐르는가 싶을 무렵 소은이가 그 큰 목소리로 이런 소리를 했다는 것이다.

 “아, 유치하다. 유치해!”


 세상에! 남편은 순간 얼굴이 뜨거워져서 혼났다고 말했다. 듣는 나까지도 낯이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내가 못 산다. 이 주책바가지! 참여수업 그렇게 기다렸으면서 한다는 짓이……. 유치원에서 돌아올 때 차 안에서 한 말은 더 가관이다. 남편이 유치하단 그 말이 내내 신경 쓰여서 다시 물어보았단다.

 “소은아, 아빠가 책 읽어주는 게 그렇게 유치했어?”

 “아니요오~ 아빠는 목소리도 좋았고 책도 잘 읽었는데 책 자체가 유치해요. 책 자체가.”

 그러더니 곧이어 “유치원이니까 유치하죠”하면서 마무리하더라나? 하이고~ 자기는 얼마나 수준 높다고… 아이고 머리야~.

 

 보통의 아이들은 학교나 유치원에 부모가 어떤 일로 가게 되면 무엇이든 좀 잘해 보이고 싶고 잘하려고 노력하는 게 보통이다. 아닌가? 소미는 그랬다. 엄마가 봐주길 바라고 엄마의 눈길이나 손길을 너무 좋아해서 부모로서 보는 즐거움과 참여하는 재미가 컸다. 그런데 소은이는 전혀 그렇지 않더라는 것이다.


 다른 아이들은 선생님을 다 잘 따라 하는데, 소은이는 자기가 하고 싶지 않으면 안 하면서 딴전이거나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있지도 않더라 했다. 내 그런 태도는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평소에 선생님께 들은 바로는 소은이가 그렇게 애먹이는 일은 없다 들었다. 오히려 무슨 일이든 후딱 해치우고 친구들 돕겠다고 나서는 바람에 원치 않는 친구들이 싫어라 한다는 소리를 듣긴 했다.

 “후딱은 하겠지. 근데 성의가 없어. 아빠가 보니까 뭘 좀 잘해봐야지 하는 자세가 안 보여. 자기가 내켜야 잘해. 때린다고 잘할 애가 아니란 거 알았어. 아, 정말 오늘 소은이 유치원에서 하는 거 보니까 정말 심각하고 심란하다. 쟤를 어떻게 해야 잘 기를까 싶어.”

 

 소은이가 소미와 아주 다른 점 중에 어른들의 눈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게 가장 독특한 점이다. 아이들끼리 있다고 엄마와의 약속을 잊고 막 행동하는 아이도 아니지만, 어른이 있다고 내키지도 않는데 잘하려고 노력하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자기 나름대로 행동의 원칙은 있는 것 같은데, 그게 동기부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180도 달라진다. 종잡을 수 없어서 아이답기도 하지만 자주 사람 난처하게 만드는 주책바가지라는 소리를 듣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런 별스러움 안에 아이디어가 반짝이고 어른을 넘어서는 상상이 큰가 하면 그것도 아닌 것 같다. 가르쳐준 것은 잘하고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을 해내는 집요함은 있다. 그런데 그 이상 응용도, 창작도 드물다. 무엇보다 소은이는 귀찮은 게 너무 많다. 좋아하는 것 빼고는 다 귀찮은 일이다. 남편은 “A형들이 좀 그래. 나도 좀 그런 편이야.” 그러는데, 내내 내 머리를 떠나지 않는 생각은 어떻게 소은이에게 동기부여를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아직까지는 큰소리로 야단치고 눈물 쏙 빠지게 매를 들면 듣는다 해도, 어른의 권위로만 되지 않는 시기는 곧 올 것이라 그게 염려된다.

 

 우선 칭찬하기로 했다. 잘 관찰하여 구체적인 칭찬을 전보다 더 많이 자주 하기로 했다.  과일칼을 내게 건네줄 때 자기 쪽으로 날이 가도록 하며 건네준 일을 칭찬했다. 이건 내 급한 성미 ‘진짜로’ 잘 좀 죽여서 치밀어 오르는 일이 있어도 윽박지르지 않고 끝까지 설명하고 이해시키고 칭찬하겠다는 수행의 시작종을 의미하기도 한다. 수도자만 고행하고 수행하는 게 아니다. 자식을 기르는 일이 무릇 그러하다는 것을 요즘 뼈저리게 느낀다.

 

그림그리다, ZZ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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