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뼘 성장드라마
엽기적인 그녀들의 말, 말, 말! (18) 본문
<문자메시지>
우리 집은 오래된 아파트의 제일 윗층 끝집인데다가 중앙난방이다. 그래서 바닥도 별로 안 따뜻하고 외풍도 심하다. 이런 집에서 세 번째 겨울을 나는데, 두 아이가 나 여행간 사이에 큰언니네 집에서 잤다. 다음은 달리는 차 안에서 소은이와 주고받은 문자.
엄마 지금 큰이모네서 밥 먹고 있는데
방이 완전 자글자글 끓어서 꽁짜로 찜질하고 있어요. 땀나^^
그래? 울 손손 엄청 좋겠네!
뒹구리 뎅구리 하니까 넘 쪼앙♥♥
걍 암것도 안하고 오랜만에 그러니까 쪼아~
(그렇다고 평소에 안 그런 건 아니지만) ㅋㅋ
근데 밥은 먹었어?
우린 떡만듀꾹 먹었어요. 땀이 주륵입니당.
잉~ 근디 엄만 뭐하세요? 미옥이 이모는 안 오셨어요?
왔지. 지금 즐겁게 여행 중이야.
손손도 언니랑 즐겁게 놀고 있어. 알았쥐?
웅~ 잘 다녀오세용~
<고기는 고긴데…>
언니가 어디서 막 잡은 돼지고기를 좀 얻어왔다며 우리집에 가져왔다. 얼리지 않은 덩어리 고기가 제법 커 반씩 나누기로 했는데 이 고기를 본 소은이가 놀라며 말했다.
“우와~ 왜 이렇게 고기가 커요? 많은 돈을 ‘목돈’이라고 하니까 이 고기는 그럼 ‘목고기’겠네?”
<배려>
올림픽이 끝나고 소은이가 어느 날.
“엄마, 김연아는 참 좋겠다. 세계 사람들이 다 알아보고 인기가 좋아서.”
“너무 유명하고 인기가 좋으니까 안 좋은 점도 많은가봐.”
“왜요?”
“너무 많이 알아보고 몰려드니까 맘대로 편하게 하고 싶은 걸 할 수가 없잖아.”
“그렇기도 하겠다.”
“김연아는 이제 다시 평범한 생활을 하기 힘들 거야. 그래서 하루만이라도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지내보고 싶은 게 소원이래. 어디 가서 영화도 보고 친구들도 만나 수다도 떨고 쇼핑도 하고 길거리에서 맛있는 것도 사먹고 그러고 싶겠지.”
“그럼 엄마, 김연아가 그동안 고생도 많이 하고 금메달도 따고 그랬으니까 우리 국민이 1년에 하루 날을 정해서 ‘김연아 모른 척하기 날’을 만드는 건 어떨까? 뭐 그런 소원은 들어줄 수 있지 않나? 어려운 것도 아닌데…”
<지진>
매일 자고 일어나면 세계 여기저기 지진 소식이 들려오자 소은이가 걱정이다.
“어후~ 지구가 몸살났나봐. 내가 볼 땐 쓰촨성 지진 때부터 아팠던 거야.”
<마음을 읽는 눈>
하도 애원을 해서 애들에게 드라마 <파스타>를 보는 걸 허락했다. 드라마 후반부에 주인공인 유경과 그의 아버지 이야기를 볼 때다. 부녀지간에 서로 말투가 늘 곱지 않은데 그걸 본 소은이가 말한다.
“아빠가 저렇게 맨날 틱틱대도 딸을 무지 사랑하나봐.”
내가 어쩌나 보려고 이렇게 받았다.
“그래? 어디가? 엄마가 볼 땐 맨날 아빠가 딸을 무시하는 것 같은데? 요리도 못한다고.”
“아니예요. 그래도 저건 사랑하는 거야.”
“어떻게 알아?”
“알 수 있어요. 말은 저래도 마음은 안 그래. 무진장 사랑하는 거예요.”
<지붕 뚫고 하이킥>
겨울방학에 집에 있는 역사책 전집 매일 조금씩 읽으면 인기있는 시트콤을 보여주겠다고 약속했었다. 이미 다 읽었는데 얼마 안 남은 종영까지 그냥 같이 본다. 그런데 최근 종영을 앞두고 이상하게 시트콤답지 않게 진지하고 슬픈 내용이 많다. 소은이가 그걸 보고 한 마디.
“아휴~ 또 슬퍼진다. 난 재밌고 웃긴 거 보고 싶은데. 이러다가 시트콤이 아니라 심각콤이 되겠어.”
<성향>
3월을 맞아 성당 주일학교도 개학을 했다. 소미는 이제 주일학교도 중고등부에 출석하고 와서는 한창 들떴다.
“엄마. 성당은 그대론데 주일학교는 더 재밌어졌어요. 언니들도 아주 잘해주고 너무 좋아.”
“잘 됐다. 중학생 되니까 달라지는 게 정말 많네.”
“그리고 나 오늘 ‘찬미부’에 들었어요.”
“전례부에 안 들고? 근데 찬미부는 뭐야? 성가대?”
“아니. 미사 전에 성가연습하거나 무슨 행사 있어서 성가 부르면 앞에 나가서 거기에 어울리는 율동을 손으로 하는 거예요. 액션송 같은 거. 즐거워 보여서 하고 싶었어.”
그랬는데 소은이가 옆에서 묻는다.
“언니는 그런 게 좋아? 튀어 보이는 게 좋아? 어우~ 난 싫어. 앞에 나가서 뭐 하는 거 정말 싫어.”
“응. 난 좋아. 근데 튀어 보이려고 하는 건 아니다 모.... 활발하고 즐거운 거 좋으니까 하는 거지. 언니들도 재미있대.”
“그게 그거지. 난 존재감이 없는 게 좋아. 그냥 난 평범하고 조용하게 냅두는 게 좋아.”
<피아노 선생님>
“난 정말 큰선생님(피아노학원 원장선생님의 언니) 때문에 스트레스 받아.”
소은이가 레슨을 다녀오자마자 푸념이다.
“왜에?”
“큰선생님하고 레슨하기 힘들어요. 왜 그렇게 나한테 관심이 많으신 거예요?”
“무슨 관심?”
“그냥 다. 맨날 나하고 얘기하고 싶어하셔서 레슨이 잘 안 돼.”
속으로 ‘쿡~’하고 웃음이 터졌지만 가만히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요즘도 요리 많이 하냐, 요리학원은 이제 안 다니는 거냐, 요리하고 음악은 참 잘 어울리니까 피아노도 잘 배워둬라, 요리는 한식만 할 게 아니면 유학을 가는 게 좋다, 넓은 데 가서 여러 나라 사람들하고 공부하는 거 참 멋지지 않니? 너 참 신통하다… 이런 걸 얘기하신다구요. 나 요리사 안 하면 큰일 나는 거예요? 큰선생님은 내가 요리사 안 되면 아주 혼을 내실 것 같아. 너무 부담돼.”
큰선생님을 좀 안다. 남편이 퇴역군인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환경을 이해하시고 군인아빠를 둔 아이들에게 신경을 쓰신다.
“아니냐. 요리사 안 된다고 무슨 혼을 내셔. 그건 이뻐하시는 거야. 관심은 애정이 없으면 안 되는 거야.”
“요리 얘기만 하시는 것도 아냐. 나하고 수다 떠는데 아주 재미를 붙이셨어.”
“수다 안 받아드리면 되지. 손바닥이 혼자 소리 나나? 그럼 ‘선생님 이제 수다는 그만~ 피아노 연습 좀 하게 해주세요’ 딱 잘라 그렇게 말씀드려 그럼.”
“어떻게 그렇게 말해요? 좋아서 그러시는데…”
<연세대학교>
“주은이가 중학교에 가서도 같은 반이라 정말 잘됐다. 근데 주은이도 책 읽는 것 좋아하나봐.”
“덕혜옹주, 그거 주은이가 권한 거예요. 너무 재밌어서 난 두 번이나 읽었네.”
“주은이는 언니나 오빠 있어?”
“언니하고 오빠가 있는데 고등학생 언니는 공부 잘한대. 연세대학교가 목표래요.”
소미랑 이런 얘기를 나누는데 갑자기 여기서 소은이가 툭 끼어든다.
“난 연세대학교 맘에 안 들어.”
“왜? 연세대학교가 너보고 뭐라 그래?”
“야, 연세대학교 좋은 학교래. 알지도 못하면서…”
소미도 한마디 했다.
“학교가 늙었어.”
난 여기까지도 뭔소린 줄 몰랐다.
“맞아. 그 학교 아주 오래된 학교야. 선교사들이 세운...”
“그게 아니라 이름이 계속 나이 들어 보여. 연세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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