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뼘 성장드라마
원점에서 시작한 진학 이야기 본문
(내가 어쩌다가 블로그에 글을 1년마다 한 편 올리게 되었는지…^^ 오랜만의 글이 쫌 길다. ㅎㅎ )
소미와 소은이가 둘 다 고등학생이 되었다. 소미는 벌써 고3이 되었고 소은이는 며칠 전 입학했다. 두 아이가 같은 학교에 다닌다. 등교 시간이 같아서 아침 식사를 식구가 함께 하니 무엇보다 그게 제일 좋다. 내가 6시에 일어나니 아침이 정말 일찍 시작된다. 아이들이 학교 가고 나면 겨우 7시 15분이다. 동네도 조용한 편인데 집마저 조용하니 수도생활을 해도 좋을 분위기다. 하루 종일 조용하다. 고딩만 있는 집다워졌다.
2월까지 느릿느릿 잠도 충분히 자면서 지냈던 터라 모두 오전시간을 컨디션 가볍게 보내는 것이 최대 난제인 3월이다. 요즘은 우리가 학교 가느라 방문을 나서기도 전에 밥상을 윗목으로 밀어놓고 작은 몸집 동그랗게 말고 아랫목에 누우시던 엄마 생각이 많이 난다. 철없던 그땐 ‘에휴 엄만... 우리가 학교나 가고 나면 누우시지’ 했는데, 새벽밥 지어 남편과 아이들 밥 먹이고 도시락 싸고 나서 그제야 물 말아 없는 입맛에 당신 입에 밥 한술 뜨고 나면 금방 밀려왔을 그 노곤함, 이제야 이해할 수 있으니 사람이 철드는 시간은 참 오래도 걸린다.
초중고를 내리 같은 학교에 다니게 된 솜손은 투덜거리면서도 나쁘지 않은 눈치다. 재학 중인 자기 학교를 좋아하는 일이 부모에겐 얼마나 수월한 기쁨인지.... 그동안 많이 컸다. 몸도 자라고(주로 체중 위주로^^) 마음도 자라고 꿈들도 자라고 고민들도 그만큼 많아졌다.
두 아이의 현재 고등학교 선택은 이미 고등학교 이후의 선택지를 어느 정도 좁혀주어서 한결 한가로운 면이 있다. 전공과목이 있어서 취향과 꿈, 나중에 일하고 싶은 분야에 대학 생각이 비교적 단단하게 잡힌 아이들이 진학하는 경우가 많다보니 고3이 되어 우왕좌왕하는 일이 그렇게 많지 않다. 대부분 공부한 대로 취업이든 진학이든 진로를 결정하는 편이다.
소은이는 고등학교 원서를 쓰기까지 깊은(?) 고민의 나날을 보냈다. 네 식구가 머리 맞대고 무수히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중2때까지는 조리 전문 고등학교 진학을 생각했으나, 염두에 둔 학교의 1년 학비가 거의 대학 학비 수준인 점을 알고 기함을 했다. 비교적 가깝게 있는 조리 전문 고등학교는 기숙사 시설이 극소수 학생만 수용할 수 있어서 수석 입학을 하지 않는 이상 학교에서 집 사이의 거리가 먼 학생부터 입실 자격이 주어졌다.
머리 아파하고 있을 즈음, 주변에 계신 어떤 분의 조언이 우리 집을 쓰나미처럼 강타했다.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근무를 하셨다가 다양한 방면에 관심이 많아 외국의 요리학교에서 공부도 하신 이 분 말씀이, 3년간 그 많은 학비를 들여 이렇게 이른 나이에 조리로 진로를 정하는 것을 권하고 싶지 않다고 하셨다. 요리를 정식 학교에서 배우는 건 양식이든 뭐든 1년이면 충분하고 그것도 좀 더 커서 해도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 아직은 다른 방면의 공부를 먼저 할 것을 권하셨다. 체력적으로 열세인 여자들이 남자가 강세인 조리 분야에서 일하고 싶으면 조금 더 다른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조리외식 분야라도 꼭 현장에서 일하는 ‘셰프’만 있는 건 아니니까 그런 점을 고려하면 요리 말고 어린 나이엔 조금 다른 공부를 먼저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유익하고 아주 시기적절하게 좋은 조언이었다. 그런데 우리 집은 멘붕이었다. 쿠궁~! 다른 공부? 무슨? 어떤? 다른 생각 안 해봤는데? 그냥 뭣도 모르고 나나 소은이나 조리고 진학만 일찌감치 못 박아두고 한가로워했는데 이건 처음부터 생각을 다시 해야 했다. 하지만 멘붕을 가져온 이 조언 덕분에 많은 대화를 하면서 지금까지 몰랐던 소은이의 속마음을 알 수 있게 된 건 의외의 수확이었다.
“엄마, 조리고 돈 많이 들어서 못 보내준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미안해하실 거 없어요. 이제 와서 이야기지만 나는 요리하는 걸 좋아하지만 요리사가 되려는 내 진로를 완전하게 내 의지로 결정했던 건 아닌 것 같아. 그냥 엄마가 아직 어린데도 내가 원하니까 요리학원 보내주시고 요리하는 게 재밌어서 그런 얘기만 막 하다 보니 그냥 어느 순간 요리하는 길로 가야 하는 애가 된 것 같아. 요리는 지금도 좋아하고 앞으로도 해보고 싶은 일이지만 요리는 내가 좋아하는 여러 가지 중 하나일 뿐이예요. 사실 말하고 싶었지만 그동안 엄마가 나한테 해주신 일들이 너무 감사하고 죄송해서 말 못했어요. 근데 요리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말 안한 건데 신샘이 그런 조언 해주시니까 용기내서 말하는 거예요. 미안해요 엄마.”
소은이는 이렇게 고백을 하더니 그 자리에서 펑펑 울어버렸다. 이런..... 난 크게 당황했다. 그래도 집에서 대화를 많이 하고 아이 이야기 잘 들어주며 키웠다고 생각하는데 이렇게 오해하면서 내가 일방통행 했구나 싶으니 너무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그렇게 속말을 할 수 없게 내가 권위적이었나 반성도 되고 신샘 조언이 아니었다면 이런 속마음을 모르고 그냥 앞서 갔을 거라 생각하니 좀 아찔하기도 했다. 그래서 오히려 깊이 안도했다.
나는 소은이에게 내 생각을 충분히 전했다. 소은아, 요리사 안 되어도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진작 말하지. 엄마는 부지런하게 움직이며 요리 좋아하며 크는 너를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이제 중학교 3학년인데 다시 처음부터 무슨 일을 생각한들 그게 무슨 문제니? 한 직업으로만 평생 사는 사람 드물어. 하고 싶은 거 해. 요리는 요리사가 안 되어도 배워두면 살면서 아주 요긴하게 도움 되는 거니까 아무래도 괜찮아. 이제부터 네가 관심 있는 다른 분야 다시 찾자.
소은이도 나도 한결 가볍게 원점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어진 치열한 고민과 갈등, 토론에서 소은이는 일반고에 들어가 수능 공부만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우리는 중학교에서 했던 많은 성격검사, 적성검사, 직업 적합도 검사 같은 것의 결과지를 다 끄집어내놓고 소은이 자기 자신도 아직 완전히 모르는 객관적인 적성을 찾기 시작했다. 보니 소은이는 미술 분야 적성이 월등히 높았다. 그리고 중학교 3년 내내 자기 학년에서 유일하게 미술수행평가 점수를 모두 만점을 맞았다. 미술 선생님 두 분이 이쪽 분야 적성을 살려 진로를 정하는 게 어떠냐고 조언해주셨던 적도 있다고 했다. 주변에서도 소은이가 될성부른 떡잎이 보인다고 미술관련 분야에 대한 강력한 추천이 이어졌다. 그런데 너무 늦은 거 아닌가 싶었다. 미술학원도 한번 안 다녀본 앤데 이제 와서 시작한다고 될까 싶었다. 주변에 이 분야 전공을 하려는 아이들도 많고 돈도 많이 들던데 속으로 은근히 근심이 되었다.
여름방학 끝나자마자 나는 소미네 학교 디자인과 선생님께 상담을 청해서 소은이와 함께 만났다. 소은이가 순수미술보다 상업미술에 관심이 많아서 아무리 머리를 돌려도 이 학교 쪽으로 자꾸 마음이 갔다. 2시간 가까이 선생님께 솔직하고도 명료한 진로 이야기를 들었다. 미술학원 안 다녀도 무방하다. 단, 1학년 때 미술기초 배울 때 화실이나 미술학원 많이 다닌 친구들 사이에서 괜히 기가 죽거나 자신감만 잃지 않으면 된다. 연필 잡는 것부터 가르쳐주니 걱정 말고, 2학년쯤 되면 다 비슷한 수준이 된다. 그리고 학교와 학원 둘 중 한 가지를 확실히 선택해라. 학교를 믿고 학교 프로그램을 따르겠다 하면 학교에서 방학도 없이 낮밤을 살 각오를 해야 한다. 학교에서 다 해주니까 학원에서 하는 말에 흔들리지만 말고 공부와 실기를 성실하게 하면 된다는 게 결론이다.
소은이는 그렇게 소미네 학교 디자인과에 입학했다. 디자인과는 25명씩 2반, 전체 50명이다. 소은이는 겨울방학 신입생 미술기초 특강, 새내기 수련회, 그리고 며칠 학교를 다니며 아주 좋아한다. 선생님이 너 진짜 미술학원 한 번도 안 다닌 거 맞냐? 이해도 빠르고 느낌도 좋다고 하셨다며 아주 좋아 입이 찢어진다. 그런데 친구들 그림 실력이 입이 떡 벌어질 정도인데다가 특히 일본 애니 덕후(일본만화광)들이 많아서 애들끼리 나누는 이야기 80프로는 못 알아듣는다고 난리다.
“엄마, 나 마음 편하고 좋아요. 목표도 확실해졌으니 이제 뭘 해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할지가 분명해서 아주 날아갈 듯 좋아.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고 고민하고 갈등 많이 할 땐 미칠 뻔했지만 보람이 있어요. 학교 선택은 후회 없어. 근데 나는 완전 정상이고 우리 반 애들은 완전 4차원들인데 괜찮겠지? 나 너무 평범하고 밋밋한가봐.”
뭐 어쨌든 소은이의 힘찬 학교생활이 보기 좋다. 소은이의 장점은 체력과 준비성이다. 어릴 때부터 아침에 한 마디만 해도 벌떡 잘 일어난다. 등교시간 딱 맞춰 가는 걸 질색하니 소미보다 한발 일찍 일어나 준비하고 먼저 나간다. 두 아이의 신학기에 좋은 기운이 가득하길 기도한다.
소은이는 지금도 즐겁게 쿠키를 굽는다
(아, 이러고 또 내년에 글 올리면 안 되는뎅… 아자아자~~!! 게으름을 떨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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